"감상만 하지 않는다…몸을 써서 배운다" 예술에 빠진 CEO
“동작만 기억하면 됩니다.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은 아름다워요’라며 알브레히트가 지젤에게 다가서는 동작, 지젤이 부끄러워하며 ‘춤이나 같이 춰요’ 하는 동작입니다. 함께 해 보실까요.”

지난 27일 오후 7시께 서울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뮤지컬단 연습실. 수강생 10여 명이 열심히 발레 동작을 따라 했다.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로부터 발레 이론을 듣고 간단한 동작을 익힌 후다. 처음엔 수줍어했지만 이내 적극적으로 동작을 취했다.

세종문화회관이 최고경영자(CEO), 전문직 종사자, 고위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20일 시작한 ‘2020 세종 ACE … 발레 CEO’의 두 번째 시간.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면면이 다양하다. 중소기업 대표,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이다.

민경우 남이섬교육문화그룹 대표는 “작년에 러시아에 출장 가서 발레를 본 이후 발레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며 “수강 신청할 때만 해도 따로 시간을 내서 강의를 듣는 게 고민이 됐는데, 이젠 현직에 계신 다양한 분들과 발레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할 수 있어 기쁘고 다음 수업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유명인 강의 듣고, 시연까지 즐긴다

"감상만 하지 않는다…몸을 써서 배운다" 예술에 빠진 CEO
최근 예술에 관심을 갖고 직접 배우는 CEO 등이 늘어나고 있다. 발레, 클래식,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강의를 듣고 예술 활동을 즐긴다. 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잇달아 생겨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은 쟁쟁한 강사진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와 파리오페라발레단 솔리스트로 활약했던 김 교수를 비롯해 강수진 국립발레단장,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최태지 광주시립발레단장, 발레리나 김주원 등이 매주 한 회씩 강의를 맡았다. 총 8회 진행되는 이번 프로그램의 강의료는 150만원이다.

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기업 CEO, 전문직 등 사회에 영향력 있는 분들이 예술에 관심을 많이 가져준다면 예술이 보다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유명인들을 섭외해 이분들의 강의를 듣고, 사진을 찍으며, 좋은 추억을 남기면 발레 공연을 볼 때마다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강의에선 다양한 시연도 열렸다. 한예종 출신 무용수 박선미, 안주원, 김민정이 수강생 앞에서 ‘지젤’과 ‘빈사의 백조’ 등에 나오는 주요 장면을 선보였다. 피아니스트 신재민은 동작에 맞춰 연주했다. 무용수들의 우아한 몸짓을 가까이서 지켜본 수강생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민 대표는 “당대 최고 무용수들의 숨소리까지 들으며 시연을 보니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김소영 한미회계법인 회계사는 “발레 공연은 아무리 앞자리를 예매해도 이렇게까지 무용수를 가깝게 볼 순 없는데, 바로 곁에서 보게 돼 감동적이었다”며 “동작도 몇 개 배워 앞으로 공연을 볼 때 더 재밌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이들을 가르친 김 교수는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명사들에게 발레를 알리는 것도 중요한 만큼 이런 기회를 자주 갖고 싶다”고 말했다.

직접 무대 올라 열정 발산도

한예종은 CEO 등을 대상으로 한 최고경영자 문화예술과정(CAP)을 2003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850명이 졸업했고, 올해도 43명이 수강하고 있다. 연극, 무용, 영상, 전통예술 등을 한예종 교수들로부터 배울 수 있다. 7개월 동안 열리는 이 과정은 940만원이다. 수강생들은 정규 수업은 물론 ‘예술활동반’에도 참여한다. 예술활동반에선 성악·기타·사진 등을 각 분야 전문가들로부터 배우고, 함께 예술제도 연다.

한예종 CAP 관계자는 “수강생들은 무대에 올라 끼와 열정을 아낌없이 발산하며 진정한 예술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체험한다”고 설명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