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2세부터 69세 어르신에 대한 무료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예방접종이 시작된 26일 오전 서울 강서구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증진의원 서울서부지부에서 한 어르신이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만 62세부터 69세 어르신에 대한 무료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예방접종이 시작된 26일 오전 서울 강서구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증진의원 서울서부지부에서 한 어르신이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을 맞은 이후 사망한 사람이 26일 오전 0시 기준 59명까지 불어났다. 지난 23일까지 관련 사망자가 36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틀 만에 23명이 추가로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질병관리청은 독감백신 접종을 예정대로 진행할 계획이다. 역학조사, 부검 결과 등 분석이 끝난 46명을 보면 백신 접종과의 인과성이 매우 낮다고 판단했다.

독감백신을 둘러싼 불안감 해소를 위해 문재인 대통령까지 진화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독감 백신에 대해선 보건당국이 전문가들과 함께 검토해 내린 결론과 발표를 신뢰해 주시기 바란다"며 "올해는 독감과 코로나(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동시 확산을 막기 위해 예방접종을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27일 <한경닷컴> 취재 결과 전문가들은 "무조건 접종하라고 권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안전성을 입증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금까지 발표한 보건당국 입장에서 발견되는 모순도 많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올해 상온노출·백색입자 문제 등이 잇따랐던 만큼, 이에 대한 의혹은 물론 사인과의 연관성을 명확히 밝히는 게 우선시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만 62~69세를 대상으로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무료접종을 시작한 26일 서울 강서구 한국건강관리협회 서울서부지부에서 어르신들이 접종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사진=뉴스1
정부가 만 62~69세를 대상으로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무료접종을 시작한 26일 서울 강서구 한국건강관리협회 서울서부지부에서 어르신들이 접종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사진=뉴스1

전문가들 "인과성 낮다는 명확한 근거 없어…전문성 의심돼"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보다 조심스럽게 살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이번주까지는 기다려보는 것을 권한다. 질병청이 사망과 접종 간 인과관계가 적다고 주장하나 완벽하게 무관하다고 보기 힘들다"며 "과거에 비해 주사를 맞고 바로 문제가 발생하는 분들이 많은 것이 사실인 만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동철 중앙대 약학대학 교수도 "질병청에서 인과성이 낮다고 말하는데 어떠한 근거로 그렇게 확신하는지 의문"이라며 "완전히 연관성이 없다고 한다면 왜 죽었는지를 얘기해야 하는데 그게 안 밝혀지지 않았나"고 반문했다. 이어 "독감백신 접종을 당분간 미루는 것을 권한다. 당국이 국민들에게 안정성을 입증해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홍렬 인하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또한 "대한의사협회가 앞서 권고한 것과 같이 23일부터 29일까지 한 주간 접종을 유보하자는 입장"이라며 "접종 시기를 며칠 늦추는 건 큰 문제가 아니다. 가장 어려운 건 환자들에게 안전성을 설명 못 하고 접종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현재 질병청의 사인 분석 및 발표에서 발견되는 모순점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병진 강북삼성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질병청이 접종 이후 사망원인 중 가장 큰 요인으로 기저질환을 꼽고 있는데 왜 그런 식으로 설명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기저질환자들을 1순위로 백신 접종을 진행하는 것은 그들이 독감 바이러스에 약하기 때문이다. 즉 기저질환자들에게 큰 문제가 없어야 접종 가능한 백신이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동철 교수도 "기저질환자가 맞아도 이상이 없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백신은 균이기에 안전성 측면에서 더 확실히 정부가 조사를 해서 원인을 밝혀야 하는데, 기저질환자니까 맞으라 해놓고 기저질환자 몸이 약해서 사망했다는 것인 이율배반적인 것"이라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사망 원인으로 '아나필락시스 쇼크' 가능성이 제기되었을 때 질병청이 바로 "관계가 없다"고 발표하지 못한 것 또한 의구심이 남는 대목이라고 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아나필락시스 부작용은 접종하고 바로 나타난다. 접종 이후 30분 이상 병원에 머물라고 하는 것 자체가 아나필락시스 때문인 것"이라면서 "그런데 질병청은 사망 시간이 접종 후 짧아야 3시간 내외인데도 아나필락시스 부작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발표했다. 매우 미흡했던 처사"라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부분을 미뤄볼 때 질병청이 전문적으로 이번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
만 62세부터 69세 어르신에 대한 무료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예방접종이 시작된 26일 오전 서울 강서구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증진의원 서울서부지부을 찾은 시민들이 예방 접종을 위해 문진표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만 62세부터 69세 어르신에 대한 무료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예방접종이 시작된 26일 오전 서울 강서구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증진의원 서울서부지부을 찾은 시민들이 예방 접종을 위해 문진표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당국 발표 두루뭉실…상온노출·백색입자 문제까지 모두 규명해야"

전문가들은 질병청이 사인 규명에 대한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조언한다. 올해 상온노출·백색입자 문제 등이 연이었던 만큼 이에 대한 의혹과 사인과의 연관성을 명확히 밝혀 보다 근본적 문제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천은미 교수는 "사실 지금은 백신의 안전성도 100% 검증이 안 된 것이다. 상온노출 사례에서도 종이박스에 동봉된 시간까지 포함하면 얼마나 노출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며 "제품만 검사해서 괜찮은 것과 인체에 들어와도 괜찮은 건 다르다. 그런 부분까지 다 검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나필락시스가 아닌 상온 노출을 더 살펴야 한다"며 "균 배양, 부검 등을 통해 혈전 등이 생겼는지를 종합적으로 검증하고 사망자뿐 아니라 부작용 사례에 대해서도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우주 교수도 "상온노출과 백색입자 백신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의료계 자체에서도 사인과 백신이 100%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는 의구심이 있는 상황"이라면서 질병청 대처에서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꼬집었다.

그는 "상온노출 백신 사례에서 나타난 안전성 검사 근거가 명확히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장기간 노출된 것은 폐기하고 짧은 시간 노출은 접종을 진행했다. 여기에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다"며 "사망 사례 번호 관련 백신을 수거해서 품질검사를 하고 출하 승인 때의 품질과 동일한지, 변질이나 오염, 함량 부족 등에서 당시와 같은지 보다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홍렬 교수도 "올해 백신 관리를 잘못한 것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면하기는 사실 힘들다. 사망에 대한 의구심도 그중 하나"라며 "아예 없었어야 할 사태가 발생한 것인 만큼 백신 제품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수반해야 한다"고 거듭 주문했다.

이어 "안심하고 독감 주사 하나 못 놔줄 상황이란 건 문제가 작지 않다는 것"이라며 "백신 관리부터 사인 문제까지 두루뭉술한 당국 발표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무조건 괜찮다고 한들 의료계를 비롯한 시민들 불신이 근절되기 어렵다"고 힘줘 말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