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tvN '나의 아저씨'
사진=tvN '나의 아저씨'
세계 문학의 거장 파울로 코엘료가 말했다.

"와! 16화까지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인간의 상태를 완벽히 묘사한 작품이다. 엄청난 각본, 환상적인 연출, 최고의 출연진에 찬사를 보낸다."
'연금술사'·'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흐르는 강물처럼'·'오 자히르' 등의 작품으로 전 세계에 이른바 '코엘료 신드롬'을 일으켰던 브라질 출신의 70대 베스트셀러 작가가 16화 분량의 영상물을 보고 감탄했다. 담백하지만 신비로운 필치로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을 가능케 하는 거장 파울로 코엘료가 각본, 연출까지 완벽한 심리 묘사에 놀랐다고 했다. 그가 정주행한 것은 다름 아닌 한국의 '나의 아저씨'였다.

세계를 홀리고 있는 K콘텐츠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한류의 시작이었던 드라마부터 미국 빌보드 차트를 장기집권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 진입 장벽이 높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영화, 글로벌 시장에서 외연을 넓혀가고 있는 웹툰까지 전방위적 활약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올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여파로 각 국경이 높아지고 경기가 위축되는 와중에도 K콘텐츠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코로나19 유행 직전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달성하며 영화사에 길이 남을 대기록을 썼을 때만 해도 그 이상은 없을 것 같았다. 이후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위기가 찾아왔고, 대중문화계의 시름도 높아졌다. 하지만 K콘텐츠는 각종 OTT(Over The Top) 플랫폼을 타고 나아가 무섭게 저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한류의 시작이라 꼽히는 드라마 시장은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한류 1세대 대표작이었던 '겨울연가'가 아시아권을 기반으로 하는 해외 진출의 첫발이었다면, 이제 시장은 미국·유럽에 이어 중동과 남미까지 확대됐다. 넷플릭스 '킹덤'에 출연했던 류승룡이 아프리카 원주민이 극중 악역인 자신을 보고 놀라 도망갔다고 밝힌 에피소드도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닌 지금이다.

'킹덤'이 불러온 K좀비 열풍에 이어 tvN '사랑의 불시착', JTBC '이태원 클라쓰' 등 다수의 작품들이 해외에서 뜨거운 인기를 얻었고, 파울로 코엘료까지 '나의 아저씨' 전 회차를 봤다며 시청평을 남겼다. 최근에는 배우 이민호가 미국 애플TV플러스(+)에서 제작하는 현지 드라마 '파친코' 주인공으로 확정되기도 했다. 그간 한류 스타들의 영어권 진출은 꾸준히 있었는데, 이번에는 주연급으로 발탁됐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 받고 있다.
방탄소년단(BTS)·블랙핑크 /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방탄소년단(BTS)·블랙핑크 /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제공
K팝은 해외 공연이 불가하다는 장애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례없는 진기록을 썼다. 그룹 방탄소년단은 한국 가수들에게는 성역으로 여겨지던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더욱 유의미한 것은 1위 진입 이후의 성적이었다. 현지 대중성의 척도가 되는 라디오 점수가 반영되는 차트 특성 상 최상위권 성적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방탄소년단은 잇따라 리믹스 버전을 내며 뒷심을 발휘했고, 총 3번의 1위, 4번의 2위, 1번의 5위를 기록하며 8주간 꾸준한 호성적을 냈다. 최근 진행한 온라인 콘서트는 191개 지역에서 99만3000명의 유료 시청자들이 관람했다.

블랙핑크 역시 정규 1집 '디 앨범(THE ALBUM)'으로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2주간 각각 2위와 6위를 차지했다. 특히 이들은 유튜브 채널 구독자수 5000만 명을 넘겨 전 세계 아티스트 중 2위를 기록 중이다.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의 확장성에 특히 기대가 모아지는 분야는 웹툰이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웹툰 시장 규모는 거래액 기준 올해 1조원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2012년 1000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8년 사이 무려 10배나 성장했다. 성장률은 매해 꾸준히 오름세다. 세계 최대 만화 시장인 일본에서도 네이버의 망가, 카카오 재팬의 픽코마, NHN의 코미코가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에 업계는 앞다투어 일본 및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는 중이다. IP(지적재산권) 확장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웹툰의 드라마화, 영화화, 애니메이션화 등 IP 확장을 통한 재생산 시도가 뛰어나다. 이미 팬층이 탄탄한 웹툰 IP의 차용은 '대박 공식'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단, 커지는 문화콘텐츠의 영향력 만큼이나 시장 가치 훼손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난 2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음악, 영화, 방송, 출판, 게임 5개 분야의 불법복제물로 인한 피해규모가 7조4404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1년에 2조원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저작권보호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협력해 접속 차단한 원천사이트의 대체 사이트 정보를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해외에서 서버에 우회하는 방법들이 많아 접속차단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따른다.

지난 추석 연휴 전 연령층에 '나훈아 붐'을 일으켰던 '나훈아 어게인 콘서트', 유료로 개최됐던 방탄소년단 온라인 콘서트, 넷플릭스 독점 다큐멘터리인 '블랙핑크 : 세상을 밝혀라'까지 중국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그대로 불법 유통돼 곤혹을 치렀다.

그야말로 잘 나가는 K콘텐츠다. 수요가 늘면서 어느덧 문화콘텐츠는 수출 선봉장에 섰다. 잘 만들어 파는 방법 만큼이나 시장 가치를 보호하는 대안 역시 중요해졌다. 웹툰 6개사는 최근 불법 유통 근절을 위한 대응 협의체를 구성하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가속을 내는 K콘텐츠의 인기, 제동이 걸리지 않도록 길을 유연하게 닦을 필요가 있다. 장애물을 걷어내기 위한 업계의 협력과 고민이 절실한 때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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