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역사는 언제든 거꾸로 흐를 수 있다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고 간 후 교회의 위상과 계급 체계는 빠르게 무너졌다. 무자비한 죽음 앞에서 누구도 ‘신의 임명’으로 만들어진 계급을 신경 쓰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교회 내 많은 성직자도 흑사병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이들의 빈자리는 거래의 대상이 됐고, 온갖 부정부패가 교회로 스며들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의학적 발전을 이룩했다고 자만하던 21세기 현대인조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을 맞아 충격과 공포에 떨고 있다. 바이러스뿐만 아니다. 태풍, 지진, 폭우와 산불 등 인간의 힘으로 대응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위협을 그 어느 때보다 자주 마주한다.

과연 이 속에서 어떤 변화를 맞게 될까. 미국의 유명 팟캐스터 댄 칼린의 《하드코어 히스토리》는 이 강렬하고 두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역사에서 찾는다.

인류가 자멸하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탁월한 인간성’을 서둘러 기르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런 막연한 기대에 대해 “어떤 사람이 외줄 타기를 10분 동안 무난하게 할 것이라는 기대는 합리적이지만, 200년 동안 해내리라는 기대는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한다. 언제든지 상황이 급변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자주 잊는다. 서기 100년께 당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국가였던 로마 제국의 치하에 있던 브리튼 제도는 ‘문명의 축복’을 누리고 있었다. 따뜻한 공중목욕탕과 아름다운 공공 건물, 환상적인 도로, 튼튼한 성벽, 온갖 종류의 요새와 방어 시설 등은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줬다.

하지만 400년대 초 로마군과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게 됐고, 100년이 흐른 뒤 브리튼 주민은 문명의 축복을 누리지 못했다. 역사가 거꾸로 흐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은 탓이다. 저자는 “지옥을 향한 길목은 언제나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경고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