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美 뿌리깊은 인종차별…남유럽 백인도 '2등 시민'이었다
1891년 3월 미국 뉴올리언스의 한 광장에 모인 8000여 명의 군중이 150여 명의 무장 자경단을 앞세워 광장 옆 교도소로 몰려갔다. 이들은 수감된 11명의 이탈리아인을 끌어내 잔인하게 살해했다. 경찰서장 살해 사건 관련자들이었다. 전날 열린 재판에서 이들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백인 검둥이’ ‘검둥이 백인’들을 직접 처형한 것이다.

《누가 백인인가-미국의 인종감별 잔혹사》의 저자는 이런 사례와 함께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들이 처음부터 모두 백인으로 행세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유럽 출신 이주자들이 ‘백인민족집단’으로 취급되고, 마침내 ‘백인 인종’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은 서서히 일어났고, 출신 국가에 따라 달랐다는 것이다. ‘원조 백인’은 앵글로 색슨계였고, 독일계·아일랜드계·북유럽계로 확장됐다. 남부 및 동부 유럽 이민자들이 온전히 백인 대접을 받게 된 건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한 20세기 중반이라고 한다.

재미 사회학자인 저자는 인종과 인종주의는 미국을 이해하는 키워드라며 비(非)백인을 차별해온 뿌리와 실태를 고발한다. 흑인의 몸값을 백인의 5분의 3으로 계산해 각 주 하원 의석을 배정했던 제헌의회, 이탈리아 그리스 등 남동부 유럽인에 대한 ‘2등 백인’ 취급, 증조부모대까지 흑인 한 명만 있어도 흑인으로 간주하는 ‘8분의 1 혈통분수법’, 비백인과 결혼한 여성의 시민권을 박탈한 버지니아주의 ‘인종보건법’ 등이다.

한국인의 시각에서 한국 출신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를 다룬 것은 이 책만의 장점이다. 열 살 때 미국에 이민을 가서 제1차 세계대전에도 미군으로 참전했으나 시민권이 거부된 ‘차의석 사건’을 비롯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하와이 한국인들이 계엄령이 해제된 1944년까지 신분증 지참, 예금 인출 제한, 단파 라디오 소지 금지 등 적국 국민에게 적용된 모든 제약을 견뎌야 했던 사실 등이 놀랍다.

인종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 종교와 과학까지 동원됐지만 모든 것은 허구로 드러났다. 인종론자들이 내세웠던 생물학적 결정론이 대표적이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인종’에 상관없이 인간 유전자의 99.9%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저자는 “인종 개념과 인종 차별은 만들어진 것”이라며 그 과정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