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미생물과의 전쟁

마이클 오스터홈·마크 올셰이커 지음
김정아 옮김 / 글항아리 / 416쪽│1만8000원

3년전 코로나 예측한 역학조사관의 경고
미국 출판시장서 베스트셀러로 역주행
에이즈·사스·메르스 등 유행병 분석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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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상하이 지역 의사들은 계절성 독감을 앓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병세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들은 응급실에서 돌보는 환자 수백 명에게 그때껏 본 적 없는 증상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틀 사이에 적어도 50명이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으로 사망한 상태다.(…)미국에서 테마파크와 쇼핑몰은 텅 비고 메이저리그는 시즌 보류를 검토한다. 세계 곳곳의 증권거래소에선 급락을 거듭한다.”

마이클 오스터홈 미국 미네소타대 감염병 연구·정책센터 설립자이자 책임자가 작가 마크 올셰이커와 함께 쓴 《살인 미생물과의 전쟁》의 19장 ‘세계적 유행병: 너무 끔찍한, 피할 수 없는’에 나오는 가상 시나리오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상황이다. 지난해 말 발생해 현재진행형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최초 발병되고 확산되는 과정을 요약한 듯하다. 2017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올 3월 코로나19 사태를 정확히 예측한 내용이 부각되면서 화제를 모으며 미국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코로나19 대응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오스터홈은 지난 40여 년간 미국 공중보건 분야에서 발생한 전염병 문제의 최전선에서 역학조사관으로 일하면서 관찰·연구하고 정책을 개발한 경험을 이 책에 담았다.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올셰이커는 박진감 넘치는 문체로 미국을 비롯해 지구상에 발생한 다양한 유형의 유행병에 대한 위험과 공포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책마을] "다가올 또 다른 전염병, 문명도 붕괴시킬 수 있다"

책은 1980년대 세계적 공포를 불러일으킨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부터 다룬다. 이어 말라리아와 결핵 등 인류에게 위협을 가하는 감염병을 우선순위별로 정리해 보여준다. 저자들은 미생물 진화의 원리를 설명하며 왜 인류가 미생물과 맨몸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지, 백신이 왜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감염병의 발병을 연구하고 확산을 막아왔던 공중보건의 역사도 다룬다. 저자들에 따르면 전기의 사용 영역을 넓힌 교류 유도 전동기를 개발한 니콜라 테슬라는 전염병 예방에 혁신을 가져온 ‘공중보건의 아버지’다. 그 덕에 세계가 안전하게 물을 길어올 수 있고, 냉장고나 우유 저온 살균, 백신 제조, 모기를 퇴치하는 에어컨도 만들어졌다.

이어 에볼라 바이러스부터 사스와 메르스까지 ‘살인 미생물’들의 전 지구적 현황을 본격적으로 서술한다. 저자들은 “우리가 중요하게 인식해야 할 것은 ‘전염의 수단’”이라며 “감염된 사람이나 동물과 접촉하는 방식, 동물이 내쉰 공기, 공기에 뿌린 미세 분말이나 액체, 표면 접촉 등 여러 가지 중 가장 위험한 것은 숨을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폐에 미생물이 퍼지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전염병에 맞서 쓸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무기’인 백신을 개발하는 게 왜 이토록 어려운지도 털어놓는다. 백신 시장은 수요가 꾸준하지 않아 시장을 예측할 수 없다. 백신 수요에 공급량이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백신 개발은 또 일종의 ‘공유지의 비극’과도 같아 민간 제약사에 맡겨선 안된다. 저자는 “공공자금, 민관 협력, 자선재단의 지원과 안내를 묶은 새로운 사업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책은 후반부에 지난 반세기의 전염병 현장과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의 양상을 정리해 정치, 경제, 사회, 국제사회가 얽혀 있는 향후 감염병 시대 패러다임을 구조적으로 파악하고 분석한다. 저자들은 마지막 장 ‘생존을 위한 전투 계획’에서 위기 행동 강령을 아홉 가지로 제시한다.

강령 1호는 ‘판도를 바꿀 독감 백신을 확보해 전 세계에 접종하라’다. ‘판도를 바꿀 백신’은 매년 새로운 독감 백신을 맞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감염시키는 HA 아형 여섯 가지와 NA 아형 세 가지에 맞서 사람을 보호하는 범용 독감 백신이다. 저자들은 과학적으로 이런 백신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선견지명이 있는 정책 지원, 기술 지원 및 재정 투입, 프로젝트 관리 체계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또 다른 독감 대유행이 재앙을 일으키기 전에 세계 인구 대다수에 접종한다면 지난 50년간 미국의 모든 응급실에서 살린 것보다 더 많은 목숨을 몇 달 만에 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국제기구를 설립해 항미생물제 내성의 모든 측면을 긴급하게 해결하고, 전염병대비혁신연합의 임무와 범위를 넓히고 질병에 맞설 백신을 민관이 신속하게 연구, 개발, 제조, 배포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저자들은 2020년 개정판 서문에서도 다가올 또 다른 전염병에 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환자용 필수 의약품과 인공호흡기, 의료진용 개인 보호장구 등을 국제사회가 전략물자로 충분한 양을 비축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이들은 “장담하건대, 다음 감염병이 발생할 것”이라며 “다음 감염병 중 하나는 코로나19보다 규모가 한 단계 클 것이며 그런 재앙을 일으킬 확률이 가장 높은 병원체는 신종 독감 바이러스”라고 경고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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