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출신 여성 지휘자 첫 내한
14일 예술의전당서 코리안심포니 지휘
프로코피예프 '고전' 베토벤 '운명' 연주
"따~따라라라 따따!"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연습실. 공연을 앞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단원들 사이에서 금발 여성 지휘자가 직접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7번'의 선율을 노래로 옮겼다. 좀 더 부드럽게 연주하라는 주문이었다. 열정적으로 지휘봉을 휘저으며 단원들을 이끈 주인공은 에스토니아 지휘자 아누 탈리(48). 세계 클래식계가 주목받는 여성 지휘자 중 한 명이다.
아누 탈리 "여성? 에스토니아? 지휘에 중요한 건 '교감'이죠"

그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 관객들을 마주한다.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코리안심포니 연주회 '고전적:Classic'을 통해서다. 이날 공연에서 탈리는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1번 '고전'과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7번,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을 들려준다. 협연에는 피아니스트 박종해가 무대에 오른다.

세 시간에 걸친 리허설을 마친 후 만난 탈리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한국에 들어온 이유부터 물었다. "음악을 어떻게든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코로나19 시대에 공연을 열고 즐길 수 있는 건 되려 소중한 '특권'입니다. 단원들에게도 부담없이 무대를 즐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탈리는 지난 3월 이후 7개월만에 지휘봉을 잡는다. 2주간의 자가격리도 기꺼이 감수했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수없이 무대에 섰을 터다. 그는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사라소타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자 1997년 25살 나이에 창단한 '노르딕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경영자 겸 지휘자다.

지휘자로 명성을 얻었지만 피아니스트로 음악 인생을 시작했다. 지휘에 눈을 뜬 후 북유럽과 동유럽을 상징하는 두 거장을 사사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를 가르친 일리야 무신과 핀란드 시벨리우스 음악원에서 '핀란드 사단'을 구성한 요르마 파놀라에게 지휘를 배웠다. 두 거장을 스승으로 둔 건 이례적이다. 그는 파놀라와 겪은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한 번은 파놀라 선생님이 제게 '지난 100년 동안 여성 지휘자가 없었어'라 농담을 건냈어요. 여성 지휘자로 살아가기 힘들거란 설명이었죠. 하지만 지휘자 자격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어요. 제게 따로 수업을 해주면서 많은 걸 가르쳐준 걸요."

탈리는 본인이 여성이란 점을 유별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휘자는 지휘와 인간성에만 신경쓰면 된다는 설명이다. "성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인간미와 재능을 봐야합니다. 물론 기회는 평등하게 줘야하죠. 어렸을 때 선생님 중에 충분히 도와주지 않는 분들도 있었죠. 여성이니까 대회에서 상을 받기 힘들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저는 열일곱 살에 상을 탔어요. 그런 말은 다 거짓말이었어요."
아누 탈리 "여성? 에스토니아? 지휘에 중요한 건 '교감'이죠"

그는 사라소타 오케스트라 공연을 이야기하며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제가 여성이라서 좋은 점은 하나 있네요. 후배들에게 길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요. 한 번은 미국 공연에서 어린 소녀가 할머니와 공연을 보러왔어요. 저를 보더니 '할머니! 지휘자가 여자야!'라 소리치며 놀랐어요. 성별의 벽을 깨고, 영감을 젊은 세대들에게 전할 수 있는 게 중요한 걸 다시 느꼈죠."

출신 지역이 한계가 되지도 않았다. 탈리는 자신이 에스토니아 출신이라 음악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에스토니아는 인구가 200만명도 안되는 북유럽의 소국이다. "에스토니아는 다양한 문화가 섞여있어요. 러시아는 물론 북유럽, 중앙 유럽에서도 영향을 받았죠. 언어에서 생각이 솟아나듯 예술적인 소통도 한결 수월했어요. 물론 음악이 가장 중요한 언어죠. 러시아 말을 모르는 코리안심포니 단원들이 러시아 민속 색채가 담긴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1번을 곧잘 연주하는 것처럼요."

탈리는 오는 16일 한국 예술경영인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화와 경험담을 설명하는 자리를 갖는다. 지휘자가 아니라 경영자로의 고민과 교훈을 청중들과 나누는 자리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