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어웨이 투 헤븐'이 수록된 레드 제플린 4집 앨범 커버. 앨범 제목이 따로 없어 '레드 제플린IV'로 쓰인다.
'스테어웨이 투 헤븐'이 수록된 레드 제플린 4집 앨범 커버. 앨범 제목이 따로 없어 '레드 제플린IV'로 쓰인다.
1주일여 전인 지난 5일(현지시간) 조용히 넘어간 한 외신이 국내 록 음악 팬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전설적 록밴드인 레드 제플린의 명곡 ‘스테어웨이 투 헤븐’에 대한 6년간의 표절소송이 마무리됐다는 내용입니다.

이 명곡의 도입부는 록 음악 마니아가 아니라하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잘 알려진 멜로디입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사이키델리록 밴드인 스피릿의 멤버 랜드 캘리포니아(1997년 사망)가 작곡한 1968년 곡 ‘타우루스’를 표절한 것이라며 그의 재산 신탁자들이 저작권 확인 소송을 2014년 제기했습니다.

스테어웨이 투 헤븐의 작곡자인 레드 제플린의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를 상대로 말이지요. 록음악 역사에서 차지하는 이 곡의 위상도 위상이려니와 이 곡의 수익이 5억달러(약 580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터라 소송에 큰 관심이 쏠렸습니다.

의혹을 제기한 쪽은 “제플린이 1970년 영국 버밍엄의 한 클럽에서 스피릿과 함께 공연하면서 타우루스라는 곡에 익숙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스피릿의 베이시스트 마크 안데스는 1심에서 “공연 때 레드 제플린의 보컬 로버트 플랜트를 만나 함께 당구를 즐기기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로 인해 1심 배심원들은 “타우루스를 몰랐다”는 로버트 플랜트와 레드 제플린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의 주장을 배격했습니다. 하지만 “스테어웨이 투 헤븐과 타우루스 모두에 담긴 음악 패턴은 1964년 개봉한 디즈니의 뮤지컬 ‘메리포핀스’의 주제가 ‘침침체리’에서도 나타나는 등 당시 흔했다”는 전문가들 증언을 받아들여 “두 곡이 본질적으로 비슷하지 않다”고 평결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제9순회항소법원은 지난 3월 이 건이 재판을 다시 할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했고, 연방대법원이 상고를 허락하지 않으면서 이 판단이 유지된 것입니다. 이와 관련, 캘리포니아의 자산관리인 측은 “레드 제플린이 재판에서 기술적으론 승리했을지라도 이제 스테어웨이 투 헤븐의 도입부를 캘리포니아가 썼다는 점 등을 세상이 알았기 때문에 목적을 달성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전엔 몰랐던 표절의혹들

이를 두고 몇몇 언론에서는 “소송에서 진 타우르스 측이 엉뚱한 소감을 밝혔다”고 주장했지만, 타우르스 측의 이런 주장이 전혀 엉뚱하기만 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동안 물 밑에서 “레드 제플린이 발표한 많은 곡들이 표절 의혹이 있다”는 얘기가 있었지요. 그러나 이 슈퍼밴드의 명성에 힘입어 이 소송이 있기 전까지는 본격적으로 표면화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소송을 계기로, 이제 스테어웨이 투 헤븐 이외에 레드 제플린의 다른 곡까지 록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표절 의혹에 휩싸인 상황입니다. 예를 들어 제플린의 또 다른 명곡 ‘모비딕’의 경우 여러 곡들을 짜집기했다는 의혹을 받은 곡입니다.

제플린의 드러머인 존 보냄은 “솔로 시작 전 합주부분은 보비 파커의 ‘더 걸 아이 러브’에서, 드럼 솔로부분은 진저 베이커의 ‘토드’ 드럼솔로 등에서 따 왔다”고 인정하기도 했지요. 이 밖에 ‘블랙독’‘홀 로타 러브’‘록큰롤’ 등 수 많은 곡들이 표절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롤링 스톤즈의 키스 리처드는 “지미 페이지가 훌륭한 기타리스트인건 인정하지만 훌륭한 작곡자는 아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지미 헨드릭스와 크림의 진저 베이커도 레드 제플린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레드 제플린의 유명 곡들 이외에도 팝, 록 역사에 이름을 새긴 많은 명곡들 가운데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곡들은 많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록 밴드 중 하나로 꼽히는 콜드플레이의 ‘비바 라 비다’ 역시 기타리스트 스티브 바이의 스승으로 ‘기타리스트의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조 새트리아니의 ‘이프 아이 쿠드 플라이’를 표절했다는 의혹에 휩싸였죠.

팬들이 제기한 표절 의혹을 조 새트리아니가 받아들였고, 새트리아니는 “창작물에 대한 명백한 표절”이라며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콜드플레이는 초반엔 “두 곡의 유사성이 완전히 우연”이라며 표절 의혹을 전면으로 부정했습니다.

하지만 이 재판은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마무리됐습니다. 콜드플레이가 새트리아니에게 거액을 주고 합의를 봤다는 게 정설입니다. 국내에서도 데뷔곡인 ‘난 알아요’가 밀리 바닐리의 ‘걸 유 노우 잇츠 트루’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서태지 등이 인터넷 대형 커뮤니티에서 잊을 만하면 표절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IT가 음악을 좌우하는 시대

2000년대 이후 대중음악의 발전을 정보기술(IT) 산업의 발전과 떼어놓고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더 이상 많은 창작자들이 기타, 피아노와 오선지를 놓고 작곡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IT 기기가 없이 창작하는 것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아졌습니다.

역으로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 산업의 발전이 과거처럼 창작자들이 과감하게 표절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먼저 나온 곡들과 조금이라도 유사하면 음악 마니아들이 유튜브를 통해 까발리는 상황 속에서 어떤 ‘강심장’ 창작자들이 표절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점에서는 IT 산업의 발달이 되레 음악계를 자정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AI) 작곡가의 곡을 들고 데뷔한 가수까지 한국에서 등장했으니, 여러모로 작곡가들의 창작환경이 만만치 않아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아무런 참조 대상 없이 순수하게 창작자의 예술적 영감에 의해 작곡되고 있는 곡들이 지금 얼마나 될지.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표절이란 게 가능하기라도 했던 과거의 음악계가 더 순수했던 것은 아닐지…

이런 질문들이 너무 ‘꼰대스러운’ 것일까요. 비틀즈와 핑크 플로이드, 김민기와 들국화에 열광했던 세대들이라면 공감하지 않을까’하고 스스로 위안 삼아 봅니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