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혁명 당시 한국 첫 자치기구 '대도소' 설치…'국민주권' 실현 계기
호남·제주지방 치소 '전라감염' 복원…역사·문화 중심 재도약
조선 시대 호남과 제주 지역 행정과 군사를 책임졌던 통치기구 '전라감영(1만6천여㎡)'의 1단계 복원 공사가 마무리돼 7일 기념식이 열렸다.

104억원이 투입돼 2017년 시작된 복원공사는 전라감사 집무실인 선화당을 비롯해 내아, 내아 행랑, 관풍각, 연신당, 내삼문, 외행랑 등 핵심 건물 7동의 원형을 되살렸다.

전라감영은 다른 도(道)의 감영과 달리 조선 500년 동안 같은 장소에 있었고, 감영의 건물 규모가 조선 시대 감영 가운데 단연 으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조선 태조의 관향이 전주였다는 사실 때문에 객사와 감영, 부영 배치의 조화뿐만 아니라 경기전, 조경묘가 적절한 공간 배치를 이뤄 전라감영은 다른 감영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공간구조를 가졌다.

호남·제주지방 치소 '전라감염' 복원…역사·문화 중심 재도약
전라감영은 전라 지역 문화 발전의 중심 역할도 했다.

전라감영은 조선 전기부터 전주 한지의 생산력에 힘입어 인쇄문화 발전에 이바지했다.

감영 내 지소와 인청의 존재는 전라감영만의 특징적 요소다.

인쇄술의 발전과 완판본 간행은 전라 문화의 지식기반을 축적하고 보급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특히 조선 후기에 다양한 완판본 소설과 가사류의 간행은 판소리의 보급과 함께 민중 의식의 성장을 이끌었다.

이 곳 선자청에서는 부채를 제조함으로써 전주 합죽선을 비롯한 부채 제조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도 했다.

따라서 전라도 전통문화의 중심이자 민중 의식 성장의 견인차 구실을 한 전라감영 복원은 앞으로 전주 옛 도심 개발과 전통문화 관광의 중심지로 나아가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라감영은 근대화 과정에서 전북도 도청 소재지로서 역할을 했다.

전북도청사는 비록 그 건축물로서 상징성을 가지기 어렵지만, 전북 지역 근대도시 발전 과정에서 감영에 버금가는 행정의 중심지로서 도시 발전에 기여했다.

1970년대 이후 도시화가 가속화하고 2005년 도청사가 신시가지로 이전되면서 감영 터는 이른바 전주시의 '옛 도심'으로 발전의 한계에 부닥쳤지만, 근대화의 과정에서 100여년간 전북도 행정의 중심지로 기능한 것이다.

호남·제주지방 치소 '전라감염' 복원…역사·문화 중심 재도약
역사를 거슬러 1894년 동학농민혁명 과정에서 호남 일대에서 봉기한 농민군은 전라감영을 점령했다.

전봉준은 관찰사와 담판으로 전라도 일대 폐정 개혁을 담당하는 집강소를 각 군현에 설치하고 그 개혁의 중심기구인 대도소를 전주 객사와 감영에 설치했다.

이로써 봉건왕조에서 억압과 수탈의 대상이었던 농민들이 지방 권력을 장악하고 직접 개혁을 단행하는 한국 근대사 초유의 농민 권력을 행사한 것이다.

비록 외국군의 개입으로 개혁이 좌절되고, 집강소를 통한 농민군의 권력 행사 기간은 짧았지만, 농민의 권력 행사와 참여의 경험은 커다란 충격이었고 이는 한국 근대사에서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는 평가이다.

이처럼 전라감영은 한국 근대사에서 최초로 농민 권력 기구가 설치된 곳이라는 점에서도 역사적 의의가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