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으로 돌아온 백건우…"모든 이의 아픔 담은 선율로 청중 위로"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75·사진)가 낭만 음악의 대가 슈만의 음악으로 돌아왔다. 2017년 베토벤, 지난해 쇼팽에 이어 이번엔 슈만 곡으로 국내 음악 팬들과 만난다. 오는 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을 시작으로 다음달 15일까지 ‘백건우와 슈만’이란 이름으로 전국 투어 리사이틀을 연다.

6일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을 통해 만난 그는 슈만을 선택한 이유로 “특별히 표현하고 싶은 세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슈만은 사망할 때까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을 지녔습니다. 동시에 인생의 쓰라림을 피아노 선율로 풀어냈죠. 순진함을 담았지만 모든 이의 아픔을 대신 말해주는 작곡가였습니다. 그런 슈만의 양면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지난달 17일 새 음반 ‘슈만’을 발매했다. 슈만의 ‘젊음과 광기’란 분열적인 성향을 CD 두 장에 각각 담았다. “이번 기회에 슈만을 재발견했습니다. 어릴 적 슈만의 곡을 연주할 땐 단순히 낭만적이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정신병을 앓고 자살을 시도하는 상황에서도 곡을 쏟아낸 그의 심정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백건우는 라벨, 리스트, 슈베르트, 라흐마니노프 등 낭만주의 작곡가의 곡을 주로 연주했고 녹음했다. 2017년에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지난해에는 쇼팽의 ‘녹턴’ 전곡 앨범을 내놨다. 앨범을 수없이 냈지만 슈만을 연구하고 녹음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슈만 작품들은 피아니스트에겐 필수 레퍼토리입니다. 피아노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작곡가였죠. 때가 되면 슈만을 다루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작품을 연구하려면 슈만의 ‘대변인’이 돼야 하죠. 그런데 생애와 음악 세계가 무척 복잡합니다. 이걸 이해하면서 한고비 넘겼습니다.”

백건우는 음반 녹음에 앞서 슈만과 관련한 수많은 문헌과 악보를 섭렵했다고 했다. 그가 바라본 슈만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생전 슈만은 손가락을 다쳐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었고, 평론가로서 자질을 입증하지 못했다. 나이 차만 10년이 훌쩍 넘는 클라라 슈만과의 사랑도 지독했다. 열등감과 정신분열로 얼룩진 생애가 전해질 뿐이다. “참 복잡한 삶이었습니다. 부모와의 관계도 순탄치 않았고 제자와의 사랑도 당시 사회상으론 용납이 안 됐죠. 순조로운 적이 없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그는 둘도 없는 음악성으로 위안을 안겼습니다. 그가 어떻게 수많은 명곡을 썼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어요.”

백건우는 이번 공연에서 슈만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첫 작품인 ‘아베크 변주곡’으로 막을 연다. 이어 ‘세 개의 환상 작품집’ ‘아라베스크’ ‘새벽의 노래’ ‘다채로운 작품집 중 다섯 개의 소품’ ‘어린이 정경’ ‘유령 변주곡’을 들려준다. “슈만이 정신분열증을 앓았다고 전해지지만 마지막 곡인 ‘유령 변주곡’을 보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쓴 곡이 아닙니다. 철저히 음을 통제하며 음표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았어요.”

백건우는 당초 두 번의 인터미션(중간 휴식)을 넣어 앨범에 실린 전곡을 들려주려고 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공연 규모를 줄였다. 연주곡을 배치한 순서는 철저히 청중을 고려했다고 강조했다. “청중의 마음을 어떻게 작품 세계로 인도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연주를 시작하면서 관객들이 마음속으로 준비되도록 해야죠. 작곡 연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심리적 흐름이 관건이죠.”

백건우와 10년 넘게 음반 작업을 해온 최진 톤마이스터(녹음 감독)가 인터뷰 도중 전화로 ‘슈만’ 음반 녹음 중 겪은 일화를 들려줬다. “믹싱 작업에 앞서 ‘유령 변주곡’을 듣는데 눈물을 왈칵 쏟았습니다. 연주자가 영혼을 쏟아부은 게 느껴졌죠. 슈만이 얼마나 괴로워했는지가 생생히 전해졌습니다. 슈만의 영혼이 조금은 위로받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