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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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시댁 먼저 방문하는 명절 문화, 바꾸는 건 아직 무리일까요?

추석 연휴에 친정부터 먼저 가고 싶다고 말했다가 시부모님과의 관계가 어색해졌다면?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가 있다. 이들은 결혼 후 설날에 시댁을 먼저 갔으면, 추석 땐 처가댁을 먼저 찾자고 협의했다. 하지만 막상 결혼 후 이 약속은 수년째 지켜지지 않았다.

아내 A 씨가 요청을 해봤지만 남편 B 씨는 매번 부모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어렵게 입을 연 A씨. 매번 시댁서 차례를 지내고 친정에 가면 형제들은 물론 친척들도 모두 떠나고 부모님만 덩그러니 남아 계시기 때문에 이번 추석에는 일찍 친정을 찾아 할머니를 비롯한 친척들의 얼굴도 보고 싶었다.

B 씨 또한 미안해하며 부모님께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시댁 방문전 B 씨는 전화로 어머니에게 말을 꺼냈다.

"엄마, 내가 결혼 전에 A랑 약속한 게 하나 있는데 명절 때 차례를 시댁, 처가 번갈아가면서 가자는 거야. 이제 세상도 바뀌었고 공평하게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서."

"그럼 명절 중 하나는 안 오겠다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어디를 먼저 가느냐는 거지"

"A가 그렇게 하자고 했니?"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시어머니는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시아버지 또한 이런 얘기를 듣고 노발대발했다.

A 씨는 "시아버지가 워낙 보수적인 탓에 분명 반대할 거고, 시어머니가 설득을 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희망이 아예 사라졌다"면서 "오히려 말을 괜히 꺼냈나 싶다. 말을 안꺼내느니만 못한 불편한 상황이 됐다"며 걱정했다.

A씨는 "반대를 하면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하나 싶다"면서 "아직까지는 시댁을 먼저 가는 게 맞는 건지, 우리가 너무 앞서가는 건지 머리가 복잡하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현대인들에게 명절로 인한 갈등 및 스트레스는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구인구직 플랫폼이 성인남녀 3507명을 대상으로 '설 명설 스트레스 여부'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58.3%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특히 성별과 혼인 여부에 따라 스트레스 정도에 차이가 있었는데, 남성은 혼인 여부에 따라 스트레스 받는 비율 차이가 거의 없는 반면 여성은 혼인 여부에 따라 스트레스를 받는 비율이 차이를 보였다. 기혼 여성은 10명 중 7명(70.9%)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지만 '미혼 여성'은 59%에 그쳤다. '기혼 남성'(53.6%), '미혼 남성'(52.4%)에 비해서도 기혼 여성의 스트레스 비율이 높았다.

이같은 문제가 아니더라도 시댁과 친정에 드리는 선물에서 차별을 하는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연 등 명절을 둘러싼 갈등은 끊이지 않아왔다.

행복하기만 해야 할 명절에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 사례들에 대해 법알못(법을 알지 못하다) 자문단 이인철 변호사에게 들어봤다.

올해는 사회적으로 코로나 19로 명절에 가족들 모임과 고향 방문 대신 조용히 지내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래도 가족들 만남에 설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즐겁고 행복해야 할 명절이 두렵고 걱정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 양가 방문 문제, 선물 문제 등으로 남편과 아내가 갈등을 겪거나 심하면 이혼까지 하는 예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갈등으로 시가와 처가, 어디에 먼저 가고 어디서 더 오래 머물러야 하는지 입니다.

"시가와 처가는 가까워서 평소 자주 모이므로 평소에 자주 가지 못한 곳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에 "무슨 소리? 똑같이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시가, 처가에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형식적으로 보면 공평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평소에 시가에는 1주일마다 가고 처가에는 명절에만 간다면 명절에는 처가에서 더 시간을 오래 보내는 것이 더 공평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디를 먼저 갈 것인지 문제도 설에는 시가를 먼저 갔으면 추석에는 처가를 먼저 가는 것이 공평합니다.

다음은 용돈 문제입니다.

”시가나 처가에 용돈을 더 드려야 한다“는 의견과 vs "양가 용돈 똑같이 드려야 한다"라는 의견 대립이 있습니다.

양가 같은 금액을 드리면 형식적으로 공평한 것 같지만 평소에 시가에는 용돈을 많이 드렸다면 명절에는 처가에 더 많이 드리는 것이 실질적으로 공평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부갈등 장서갈등 문제도 심각합니다.

1994년 7월 결혼한 부부 사건입니다. 결혼 14년 차 남편은 아내가 맞벌이를 이유로 시부모를 소홀히 대한다며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가정법원은 ”아내가 전통적인 며느리의 역할을 소홀히 해 가정불화가 야기된 점이 인정된다며 맏며느리인 아내가 결혼 이후 시부모의 생신이나 명절에 시댁을 제대로 찾지도 않는 등 전통적인 윤리의식이 부족했다“며 남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입니다. 그 당시만 해도 아직도 아내와 며느리의 일방적인 희생을 당연시한 판결이었습니다.

그 후의 판례는 남녀평등, 부부 평등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시가의 명절 음식 준비를 혼자 힘들게 하다가 미끄러져 허리를 다친 며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와 시가 식구들은 도와주기는커녕 며느리에게 핀잔을 주고 남편도 "시댁에 좀 더 잘하라고 구박만 했다고 합니다. 이에 며느리는 남편, 시누이와 시부모님과 말다툼을 심하게 하고 혼자 집으로 돌아와 이후 이혼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가정법원은 ‘부부가 똑같이 책임이 있다’라며 양측의 요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재판부는 “남편은 시댁에 대한 의무만 강요하면서 친가 식구와 함께 아내를 타박했고, 아내는 반감으로 시댁 식구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아버지에게 대들기까지 했다”라며 “남편과 아내 모두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라고 판결했습니다.

이런 판결은 최근 아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최근 가정법원의 이혼 판결의 경향은 혼인 파탄의 책임이 부부 모두의 대등한 책임이라면서 쌍방책임으로 결론을 내리는 판결이 부쩍 증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건은 “남편이 아내를 폭행하고 외도하고 일방적으로 가출했는데 아내가 남편을 찾아가서 가정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아내도 똑같은 잘못이 있다는 판결도 있었습니다.

물론 혼인 파탄의 책임을 어느 한쪽으로만 볼 수 없어서 부부 모두의 책임이라고 하는 점은 이해가 되지만 부부가 정확히 똑같이 50:50의 잘못으로 혼인이 파탄되는 경우는 존재하기가 어렵습니다.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분명히 부부 일방의 책임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거의 모든 사건을 완전히 균등한 책임이라고 하는 점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명절갈등 사건도 시가의 음식 준비, 제사준비로 시달리는 아내가 시가의 타박에 그동안 억눌린 감정이 폭발해서 갈등이 생겼다면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측이 더 잘못이 크다고 할 것입니다.

명절이 두려운 며느리들은 특히 "왜 명절 음식 준비, 집안일을 모두 여자들만 해야 하는지“ 불만이 큽니다. 남편들도 할 말이 있습니다. "남성들은 운전하고 벌초하는 것도 힘들고 매년 본가와 아내 사이에서 눈치 보는 것도 힘들다“고 합니다.

물론 남편들도 힘이 들겠죠. 이해합니다. 그러나 온갖 음식 준비 특히 전 부치는 제사 음식 준비, 설거지 등 온갖 힘든 가사에 비하면 운전, 벌초는 솔직히 덜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평상시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겠지만 명절에는 분명히 아내들이 더 힘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명절에 이렇게 서로 힘든데 왜 굳이 모여서 힘들게 음식 준비, 제사준비하고 갈등하고 심지어 이혼까지 해야 할까요?

이제는 문화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상님들을 위해서 살아있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힘들어하고 갈등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문화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제사 문화를 간소화하고 각자 가족들이 조용히 조상을 기리면서 주거나 부모님과 가족들끼리 오붓하게 여행을 가거나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는 명절을 보낸다면 누구나 다음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올 추석! 건강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명절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법알못] "명절에 친정 먼저 가면 안되나요?"
도움말=이인철 법무법인리 대표변호사

이미나/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