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전
'개 위한 전시' 열린다…견공에 문 연 국립현대미술관(종합)
고요하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1일 간간이 "왈왈" "멍멍" 소리가 퍼졌다.

영상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이날 미술관에 온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 세상이, 세동이가 짖는 소리다.

개들이 미술관을 누비는 생소한 풍경이 펼쳐졌다.

작품도 특별했다.

철저히 개의 눈높이와 취향을 고려한 맞춤형 전시다.

반려동물 인구가 급증하면서 개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미술관은 허락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MMCA)의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전은 개가 주인공이 전시다.

철저히 인간 중심 공간이었던 미술관이 개와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하는 공간이 됐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안내견을 제외한 개 출입이 허용된 것은 처음이다.

반려동물로 개를 키우는 이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줄 전시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미술관이 잠정 휴관 중이어서 당장 현장 관람은 불가능하다.

이날 현장은 오늘 25일 유튜브 채널을 통한 온라인 개막을 앞두고 언론에만 공개됐다.

작가 13팀의 설치, 조각, 애니메이션 등 작품 20점이 전시된다.

파란색과 노란색이 많이 눈에 띈다.

적록색맹인 개가 바라보는 세상이 노란색과 파란색 중심이기 때문이다.

풀밭에 놓인 김용관의 '알아둬, 나는 크고 위험하지 않아'는 굴러가고, 회전하고, 올라갔다 내려갈 수도 있는 다양한 형태의 놀이기구다.

도그 어질리티(장애물 경주)에 사용되는 기구와 비슷한 조각들을 설치한 조각스카웃의 '개의 꿈'도 미술관 마당에서 개들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개 위한 전시' 열린다…견공에 문 연 국립현대미술관(종합)
실내도 개를 위한 공간으로 꾸며졌다.

건축가 김경재의 '가까운 미래, 남의 거실 이용방법'은 개를 위한 쿠션과 테이블을 설치해 인간의 거실을 재해석했다.

조경가 유승종의 '모두를 위한 숲'은 자연을 과감하게 전시실로 가져왔다.

바닥에는 나무껍질 등이 깔렸고, 푸른 잎 식물도 놓였다.

개가 시각보다는 후각 등에 예민하다는 점을 고려해 숲의 냄새와 물기 등도 느끼도록 했다.

개들만 호강시키는 전시는 아니다.

관람객들에게도 현대사회에서 반려의 의미, 우리 사회에서의 타자들에 대한 태도, 공적 공간에 대한 개념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전염병으로부터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면역혈청을 싣고 밤낮으로 썰매를 끈 개들의 형상을 애견 사료로 만든 정연두의 '토고와 발토-인류를 구한 영웅견 군상',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의 머리에 고정된 카메라가 동시에 찍은 장면들을 보여주는 한느 닐센·비르기트 욘센의 '보이지 않는 산책' 등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여러 작품이 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개가 관람 주체가 되는 시도가 미술관 기능과 역할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좋은 의미의 '개판'을 마련했는데 코로나19로 문을 열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성용희 학예연구사는 "많은 사람이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지만 공적 외부공간에는 데리고 가지 못할 때가 많다"라며 "개와 인간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개들이 미술관에 오는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퍼포먼스로는 인간 중심적인 상태를 벗어나 다른 무엇이 되기를 시도하는 김정선·김재리의 '신체풍경', 반려 로봇 아이보와 미술관을 산책하는 남화연의 'Curious Child', 사물인터넷 기기 여러 대가 주고받는 소리를 개와 사람이 함께 듣는 다이애나밴드의 '숲에 둘러서서', 반려조 앵무새와 사람이 함께 퍼포먼스를 하는 양아치의 '창경원 昌慶苑' 등이 열린다.

데릭 저먼의 '블루'(1993), 안리 살라의 '필요충분조건'(2018), 장뤼크 고다르의 '언어와의 작별'(2014) 등 전시 주제와 연관된 영화 3편도 상영된다.

전시는 다음 달 25일까지로 예정돼 있다.

온라인에서는 성용희 학예연구사의 전시설명, 참여 작가 인터뷰, 작가들의 개가 직접 전시장을 방문한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개 위한 전시' 열린다…견공에 문 연 국립현대미술관(종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