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롯데콘서트홀 연습실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배성연.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서울 롯데콘서트홀 연습실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배성연.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발달장애란 한계를 딛고 연주 활동을 이어온 피아니스트 배성연(26)이 15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독주회 ‘열정’을 연다. 롯데문화재단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위축된 공연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마련한 무관중 온라인 공연 지원 사업 ‘뮤직 킵스 고잉(Music Keeps Going)’의 네 번째 무대다.

배성연은 발달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서울예술고에 입학했고, 서울대 음대에 진학해 지난해 졸업했다. 전국장애인종합예술제 전체대상, 전국학생음악경진대회 피아노 대상, 학생음악실기평가대회 대상 등을 수상하며 연주력을 인정받았다. 이번 리사이틀에서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과 17번 ‘템페스트’를 비롯해 리스트의 ‘베네치아와 나폴리’ 중 ‘곤돌라를 젓는 여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부조니가 편곡한 바흐의 ‘샤콘느’ 등 공연의 주제인 ‘열정’에 걸맞은 강렬한 작품을 연주한다. 지난 11일 롯데콘서트홀 연습실에서 배성연과 그의 어머니 강선옥 씨를 만났다.

“사람들의 소리는 성연이에게 ‘소음’으로 들려요. 하지만 오케스트라 음악은 선율을 구성하는 악기음 하나하나를 다 기억합니다.” 강씨는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이렇게 설명했다. 배성연은 어릴 때 의사로부터 발달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자폐증’이라고 불리는 장애다. “성연이의 언어와 인지 능력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지만 음악에서는 누구 못지않게 뛰어납니다. 피아노 연주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죠.”

인터뷰 도중 스마트폰을 만지며 딴청을 피우던 배성연은 피아노 건반 앞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했다. 프란츠 리스트란 얘기를 듣고는 곧장 악보 없이 이번 공연의 레퍼토리인 ‘곤돌라를 젓는 여인’을 연주했다. 음정과 박자 흐트러짐 없이 연주를 끝냈다. 강씨는 아들이 여섯 살 때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피아노를 가르쳤다고 했다. “네 살 무렵 노래를 부르는데 박자와 음정이 정확했어요. 동요를 가르치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을 가르쳤어요.”

배성연이 음악생활을 이어가게 된 건 초견(악보를 보자마자 치는 능력)과 암보력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처음 보는 악보를 두세 번 연속해서 치고 나면 전부 외웠다고 했다. 발달장애인이 특정 분야에 천재성을 보이는 ‘서번트 증후군’의 전형이다.

기계적으로 음표를 치던 배성연의 음악적 재능이 꽃핀 시점은 ‘뷰티플 마인드’를 만나고 나서다. 발달장애 아동과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자선단체로 2007년 설립됐다. 150여 명의 음대 교수가 재능기부 형식으로 학생을 가르친다. “성연이가 중학생이 되자 전문 교육을 받아야 했는데 그때 뷰티플 마인드를 만났어요. 서울예고에 들어갈 때까지 피아노를 배웠죠.”

배성연은 일상에서 감정 표현에는 서투르지만 피아노 연주에는 감성이 묻어 나온다. 그의 연주에는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순수함과 열정이 배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씨에 따르면 배성연이 사사한 주희성 서울대 음대 교수는 그의 연주를 듣고 “오랜만에 순수하게 연주하는 학생이 나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기교를 뽐내거나 멋부리지 않고 연주에만 몰입한다는 설명이다.

배성연은 이번 공연에서 그동안 갈고 닦아온 순수한 음악 열정을 마음껏 발산하겠다는 각오다. 공연 이야기를 나눌 때 그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긴장되지 않냐”고 묻자 고개를 저었다. 리사이틀을 앞둔 소감을 묻자 활짝 웃으며 답했다. “굉장히 좋아요. 하하하. 많이 좋아요.”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