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랑 개인전 '판타스틱 맨'
기쁨·슬픔이 공존하는 세계…문형태 "그림에 짠함 넣고 싶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처럼 삶에는 희로애락이 공존한다.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그늘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국내 미술시장에서 손꼽히는 인기 작가 중 한 명인 문형태(44)의 작품에도, 삶에도 인생의 양면이 교차한다.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에 상상력을 입혀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작가는 특유의 색감과 동화적인 감수성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 경매에서 낙착률이 90%에 달했고, 갤러리에 작품이 걸리면 순식간에 판매된다.

그의 작품은 익살스럽지만, 마냥 밝지만은 않다.

넘치는 위트 속에 복합적인 감성이 숨어 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개막한 개인전 '판타스틱 맨(Fantastic Man)'에도 행복이 넘쳐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싸우는지 사랑하는지 알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9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내 그림이 처음에는 예쁘장하다가 결국은 슬퍼 보였으면 좋겠다"라며 "지구상의 어떤 좋은 것들도 그 안에 짠함이 있다고 믿고, 그런 짠함을 그림에 넣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회화 약 35점과 오브제 7점을 소개한다.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한 작품부터 삶의 본질을 예리하게 포착한 그림까지 다채롭다.

겉으로는 따뜻하지만 고통과 슬픔도 담긴 성인 동화를 보는 느낌이다.

코로나19 시대를 다룬 작품도 눈에 띈다.

두 사람이 뒤엉킨 형태가 마스크를 연상케 하는 그림, 두 사람이 마스크 하나를 같이 쓰고 있는 듯한 그림이 소통과 단절을 이야기한다.

인형을 만드는 석점토를 활용한 오브제도 눈길을 끈다.

오리 주둥이 대신 혓바닥을 내민 러버덕 'Rever duck', 굴뚝에서 연기 나는 모습에서 착안해 심장에서 피가 솟는 모습을 묘사한 'Heart' 등으로 회화와는 또 다른 이야기를 담아냈다.

기쁨·슬픔이 공존하는 세계…문형태 "그림에 짠함 넣고 싶다"
'Porche 911 turbo s'는 자동차 수집가인 작가가 가장 사랑하는 차를 모델로 한 오브제다.

다만, 성공한 작가가 과시하듯 자신의 고급 스포츠카를 작품으로 옮긴 것은 아니다.

문형태는 "집도 없고 차도 없던 시절, 난방도 되고 잠도 잘 수 있는 조그만 차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며 "그때부터 차를 좋아했고 드라이브가 인생의 낙"이라고 말했다.

그는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 있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돈 욕심이 있었다"라며 "그러나 지금은 운 좋게 오로지 작품을 위해 그릴 수 있게 됐고,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놀이로 그림을 시작한 것임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 주제는 즐겨보던 잡지에서 영감을 얻었다.

네덜란드 남성패션지 '판타스틱 맨'은 고급 시계와 자동차, 화려한 셀러브리티의 화보로 가득 찬 기존 잡지와 달리 흥미로운 인물들의 삶을 담는다.

문형태는 "멋진 차와 멋진 집,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이 성공이 아니었다"라며 "인지도가 높아지고 작품 판매도 잘되면 과연 성공한 것인가 생각하게 됐고, 그림을 그리면서 스스로 반성했다"라고 말했다.

생계를 걱정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출발해 미술계 '블루칩'이 된 작가는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더 과감하게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할 당시 작가는 선화랑에 "안 팔려도 그리고 싶은대로 그리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화랑 측도 흔쾌히 작가의 뜻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일부 작품에 성적인 코드와 그로테스크한 표현도 등장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원래 내 그림에 성적인 요소가 담겨있는데, 성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를 더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작품도 구상했다"라며 "이번에는 많이 용기를 못 냈지만 앞으로 행보는 바뀔 것"이라고 변화를 예고했다.

9월 29일까지.
기쁨·슬픔이 공존하는 세계…문형태 "그림에 짠함 넣고 싶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