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여성영화인모임은 지난 2000년 설립 이듬해 바로 '여성영화인사전'을 내놨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 활약한 여성 영화인을 호명하고 그 활동을 기록한 책이다.

한국 영화 역사의 첫 30년 동안 배우를 제외하면 이름을 남긴 여성은 5명의 감독과 십여명의 스태프들뿐이었다.

여성 영화인들이 직접 쓴 계보…신간 '영화하는 여자들'
설립 20주년을 맞은 여성영화인모임은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두 번째 30년 동안 영화계 각 분야에서 활약한 여성 20인의 인터뷰를 엮은 책 '영화하는 여자들'(사계절 펴냄)을 통해 김영희(편집), 이경자(편집), 이해윤(의상)에서 시작된 여성 영화인의 계보를 이었다.

한 분야에서 앞서 걸어간 이들을 기억하고 뒤따라올 이들을 살피는 여성들의 연대가 왜 필요하고, 어떻게 작용하는지 궁금한 이들에게 길잡이가 될 만하다.

감독과 배우는 물론, 제작자와 촬영, 미술, 조명, 사운드, 편집 등 세부 분야의 전문가, 마케터, 저널리스트, 영화제 프로그래머까지 이들이 자기 분야에서 겪어낸 변화와 성취, 좌절과 연대를 담아냈다.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와 이를 반기는 관객이 등장한 1990년대, 세계적 수준의 전문가들이 질적·양적 수준을 끌어올린 2000년대, 새로운 감수성의 창작자들이 개성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2010년대가 여성 영화인 20인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인터뷰의 시작은 제작자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다.

'접속'(1997), '공동경비구역 JSA'(2000) 같은 시대를 상징하는 영화 이후 또 다른 대표작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이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주인공인 스포츠 영화에다 결국 패배하는 이야기'인 이 영화를 한국의 여섯번째 여성 감독인 임순례 감독과 함께 기어이 완성했고, 400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의미 있는 성공을 만들어냈다.

여성 영화인들이 직접 쓴 계보…신간 '영화하는 여자들'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 문소리는 이 책의 인터뷰에서 "여성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어떤 처지인지, 어떤 일들을 겪게 되는지, 그리고 심재명이라는 제작자는 어떤 길을 걸어왔고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같은 것들이 아주 크게 다가왔다"며 "그분들이 저한테 끼친 영향이 굉장히 크다"고 밝혔다.

책에서는 미술과 촬영, 조명, 편집 등 영화를 완성하는 작업이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현장 스태프들의 구체적인 일과 고민, 노동 환경의 변화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2018년 개소한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은 여성 영화인들의 연대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결실이다.

민간이 주도해 만든 성평등센터는 처음이기에 자부심이 더 크다.

주진숙 한국영상자료원 원장과 여성영화인모임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던 영화사 연구자 이순진이 함께 썼다.

396쪽. 1만9천800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