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트랙터가 탱크로, 화학비료가 화약으로
제목이 눈길을 끈다. ‘전쟁과 농업’. 사람을 죽이는 전쟁과 사람을 먹여 살리는 농업이 나란히 등장했다. 이 둘의 어떤 관계를 다뤘을까. 농업사학자이자 현대독일사학자인 후지하라 다쓰시가 쓴 이 책은 농업과 전쟁에서 효율성과 즉효성이란 키워드를 뽑아내 현대사회를 운영하는 시스템을 살펴본다.

저자에 따르면 19세기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한 기술은 농민들을 고된 노동에서 해방시키고, 생산성을 급격히 향상시켰다.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 등 농기계는 농사일 대부분을 떠맡았다. 화학비료는 거름을 대체했고. 농약은 해충 구제와 잡초 제거를 해결했다. 농기계, 화학비료, 농약, 품종개량이라는 농업 4대 기술은 현대 농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이 농업 기술들은 1차 세계대전을 대량·무차별 살상이 이뤄진 현대전으로 바꿔놓았다. 트랙터의 캐터필러는 탱크에 장착돼 전장을 누볐고, 화학비료 생산의 핵심 기술인 공중 질소 고정법은 화약 제조에 쓰여 기관총 사용을 가능하게 했다. 전쟁에 사용된 무기가 농업에 쓰인 사례도 있다. 1차 세계대전에 등장한 독가스는 가공할 살상력으로 인해 사용 금지됐다가 이후 농약으로 개발됐다. 저자는 이런 ‘듀얼 유스(군사기술과 민생 기술의 이중 사용)’에 대해 “농업과 전쟁 모두 대량화와 무차별성이라는 기반을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트랙터가 그 바퀴 아래 작은 곤충과 생물들을 가리지 않고 밟고 지나가듯, 탱크는 적군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짓밟으며 포를 겨누게 된다는 것이다.

현대 농업이 추구한 효율성과 그 효과를 즉시 확인하려는 즉효성은 이후 제초제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유전자 조작 작물을 탄생시켰고, 이물질 혼입과 식료품 대량 폐기, 가축전염병 등을 일으키는 단초를 제공했다. 저자는 이에 기반한 식문화 시스템과 농업 생산구조가 전쟁은 물론 정치와 경제의 모습까지 바꿔놨다고 말한다. 그는 “폭력과 배제에 기반한 현대문명과 뿌리를 같이하는 식문화 및 농업부터 자연과 인간의 상호주의적 관점에서 재정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