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침수 이재민 "언제 집에 가나"…산사태 이재민 "불안해서 못 가""
"집에 가도 걱정, 못 가도 걱정" 수해 이재민의 깊은 한숨들
"집단 수용소에 갇혀있는 느낌이에요.

"
수해로 보금자리를 잃고 전남 구례군 임시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이재민 정모(53)씨는 13일 답답한 마음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 이달 7일부터 일주일 가까이 이어진 대피소 생활은 "사는 것 같지 않다"고 표현했다.

딱딱한 대피소 바닥에서 잠을 청해보지만 밝은 조명과 침수된 집 걱정에 자는 듯 마는 듯 뒤척이다 보면 어느새 동이 텄다.

침수로 엉망이 된 집을 온종일 복구하느라 지친 몸은 일으키는 것조차 고되다고 느껴졌다.

겨우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난 김씨는 지자체와 자원봉사자들이 준비해 준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해결하고 침수된 집을 치우기 위해 대피소 문을 나섰다.

침수 피해가 컸던 구례읍 오일시장엔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가 모여 복구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씨를 포함해 시장 인근 주택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인력 부족으로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다들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혼자서라도 손을 바쁘게 놀려보지만 치워도 치워도 끝이 보이지 않은 집을 바라보면 막막할 따름이다.

정씨는 "시장 복구도 중요하지만 당장 지낼 수 있는 곳이 없는 인근 거주민들의 주택도 시급히 복구할 수 있도록 인력배치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집에 가도 걱정, 못 가도 걱정" 수해 이재민의 깊은 한숨들
구례군 문척면 죽연마을 이재민들은 그나마 인력 지원을 받아 폐기물 정리를 마쳤지만 여전히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다.

주택 내부가 아직 마르지 않은 데다 도배와 장판 작업을 해야 해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침수된 가전제품이며 가재도구며 살림살이도 남아있는 게 거의 없어 온전한 일상은 아직 먼 얘기다.

집단생활이 길어지고,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서 건강과 위생 관리에 대한 걱정도 커지고 있다.

코로나19를 포함한 수인성 감염병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열이 나기만 해도 덜컥 겁이 난다고 했다.

죽연리 이장 김영현 씨는 "대피소에 사람들이 많아 노인들이 제대로 주무시지도 못하는 것 같다"며 "나이 많은 분들이 대다수인데 몸 상태가 다들 좋지 않으니 병에 걸릴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구례군은 정부에 컨테이너로 된 임시 거주 시설을 마련해 줄 것을 건의하기로 했다.

"집에 가도 걱정, 못 가도 걱정" 수해 이재민의 깊은 한숨들
반면 온전한 집을 두고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재민도 있다.

산사태로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전남 곡성군 오산면 주민 65명은 추가 산사태 우려로 인근 학교 강당 등에 대피했다가 이날 대부분 복귀했다.

산사태가 덮친 주택의 처참한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으로 돌아온 주민들은 또다시 산사태가 나지 않을까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멀쩡한 집을 마냥 비울 수 없는 노릇이고 생계를 위해 농사일을 다시 하려면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

이 때문에 주민 김준호 씨는 함께 살고 있던 딸은 광주로, 아들은 곡성읍으로 보내 당분간 집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김씨는 "사고 현장을 보면 불안해서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며 "언제 또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정부나 지자체가 이주 대책을 세워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록적인 폭우로 구례와 곡성을 포함한 섬진강 유역에서는 2천363명의 이재민이 발생해 이날 오전 7시 기준으로 570명이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장성과 나주, 담양 등 영산강 수계에서도 1천158명의 이재민이 발생해 94명이 대피 중이다.

"집에 가도 걱정, 못 가도 걱정" 수해 이재민의 깊은 한숨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