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과 편지·핑크 북

▲ 로르샤흐: 잉크 얼룩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다 = 데이미언 지음, 김정아 옮김.
10장의 잉크 얼룩 카드로 심리 상태를 알아보는 '로르샤흐 테스트'의 창시자인 스위스 출신 심리학자 헤르만 로르샤흐(1884~1922)의 일생과 그가 개척한 심리검사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심리학계에 끼친 영향에는 걸맞지 않게 로르샤흐라는 인물은 베일에 싸여 있었고 그의 삶을 제대로 담은 전기는 이 책이 처음이다.

미국의 작가이자 번역가인 저자는 로르샤흐의 일기와 메모, 가족·친구·동료들과 나눴던 편지, 로르샤흐 연구가의 인터뷰 기록물 등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정리했다.

화가의 아들로 태어나 남다른 그림 실력을 지녔던 로르샤흐는 이런 배경 때문인지 지각 경험에 관심이 많았다.

러시아 문화에 매료됐던 그가 정신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직업적인 야망 때문이라기보다는 영혼을 치유하고 싶은 톨스토이주의 성향의 발로였을 것이라고 저자는 짐작한다.

정신과 의사가 된 로르샤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나 융의 심리유형 등 당대 정신의학계의 새로운 이론과 씨름하면서도, 동시에 미래파나 추상예술 같은 새로운 예술 사조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인류학적 측면에서 지각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1917년 그가 스위스의 한 정신 질환 보호시설에서 홀로 연구한 끝에 고안해낸 잉크 얼룩 그림 10개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중요한 심리검사 도구의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

정신과 의사이자 뛰어난 시각적 감성을 지닌 예술가로서 시각 경험과 심리의 관계를 밝히는 데 열정을 바쳤던 로르샤흐였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갈마바람. 672쪽. 2만8천원.
[신간] 로르샤흐: 잉크 얼룩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다

▲ 아버지의 사과 편지 = 이브 엔슬러 지음, 김은령 옮김.
친족 성폭력 피해자이자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작가인 저자가 책임을 회피한 채 세상을 떠난 가해자, 더는 어떤 법적 처벌도 할 수 없고 사과조차 기대할 수 없는 아버지를 무덤에서 불러내 피해자인 자신 앞에 세운다.

아버지에게 5살 때 처음 성폭력을 당한 저자는 10대 이후에는 학대, 폭행, 가스라이팅 등 잔혹한 폭력에 시달렸다.

폭력의 희생자가 아닌 생존자가 되어 극작가로서 여성의 몸에 대해 숨김없이 이야기하고 사회운동가로서 각종 폭력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 온 저자이지만 시간이 지나도 절대 흐려지지 않는 과거의 상처로 평생을 휘청거렸다.

그런 그가 가해자인 아버지가 자신에게 사과 편지를 보내는 일을 '상상'함으로써 수십 년 동안 묻어둔 진실을 복원해낸다.

아버지가 자신을 어떻게 유린했는지, 또 그 당시 자신의 감정이 어땠는지를 묘사하는 것과 함께 '현실과는 다른 결과', 즉 가해자가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명백히 밝히고 인정하며 진심으로 사과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일은 '마침내 나를 자유롭게 만들려는 노력'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심심. 208쪽. 1만5천원.
[신간] 로르샤흐: 잉크 얼룩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다

▲ 핑크 북 = 케이 블레그바드 지음, 정수영 옮김.
여성 정체성과 심리를 주제로 그림을 그려온 저자가 다양한 그림과 함께 핑크의 색다른 의미를 탐색한다.

핑크는 여자아이들의 색이라고 믿는 이들이 많고 핑크는 여성스러움의 대명사가 됐지만, 사실 '핑크는 여자, 파랑은 여자'라는 성별 코드가 고정된 시기는 고작해야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회적·문화적 배경에서 핑크가 어떻게 자리매김해 왔는지를 알아보고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정장과 엘비스 프레슬리의 자동차 등 역사 속의 핑크를 소개한다.

또 핑크 동물과 식물, 도시 속의 핑크, 우리 주변에서 무심코 만날 수 있는 핑크 반창고, 성 소수자들의 핑크빛 삼각형 이야기와 함께 지극히 개인적인 핑크의 추억을 풀어놓는다.

저자는 핑크가 '변신하는 색'임을 강조한다.

색상에 따라, 또 맥락과 주변 색에 따라 낭만적이지만 대담하고 저속하기도 하다.

파스텔 핑크, 페미니즘과 핑크의 상업화를 이끈 밀레니얼 핑크, 최신 유행을 이끈 형광 핑크까지 역사와 다양한 문화권에서 핑크는 유행을 거듭해오며 자신의 색과 의미를 유연히 바꿨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덴스토리. 184쪽. 1만5천원.
[신간] 로르샤흐: 잉크 얼룩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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