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오산면에서 토사 유출 추정 산사태로 3명 사망·2명 실종
'우르릉쾅' 산 넘어온 토사 더미에 새내기 귀촌이장 부부도 참사
"재난 방송 보면, 진동이 울리면 대피하라고 그러잖아. '우르릉 쾅' 하고 굉음이 울려 퍼졌다니깐."
전남 곡성군에는 7일 온종일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거센 폭우가 쏟아졌다.

오산면 주민 박모(53)씨는 8시 20분께 후덥지근한 날씨에 속옷 바람으로 집에서 쉬고 있다가 지진이 난 것 같은 커다란 소리와 진동에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밖을 내다본 그의 눈앞에서는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마을 뒷산을 타고 양을 가늠하기도 힘든 토사가 이웃집 세 채를 불과 10초 사이에 덮쳤다.

세 채 중 마을 이장 부부가 살고 있던 집은 밀려든 토사에 휩쓸려 무너져 내려 집 옆 논밭에 처박혔고, 나머지 두 채의 집에는 물기를 잔뜩 머금은 진흙 같은 토사가 하염없이 덮쳤다.

흙더미는 50~100m 더 흘러가 외딴집 한 채를 더 덮쳤다.

박씨는 바지춤을 부여잡고 서둘러 집 밖으로 뛰쳐나가, 이웃 동생부터 피신시키고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산사태가 났다.

대피해요.

대피해!"를 외쳤다.

'우르릉쾅' 산 넘어온 토사 더미에 새내기 귀촌이장 부부도 참사
같은 시각 다른 마을 주민 부부는 집에서 우레와 같은 소리를 듣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남편은 저수지 둑이 무너진 줄 알고 저수지로 달렸다가 저수지가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는 집에 돌아왔더니, 맨발로 함께 뛰쳐나간 아내에게 산사태가 났다는 소리를 들었다.

마을 주민들이 구조대원들이 도착하기 전에 집의 잔해를 뒤져 생존자를 찾으려 했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구조 당국이 폭우를 뚫고 중장비까지 동원한 구조 작업 끝에 3명의 실종자를 발견했지만, 모두 숨졌다.

사망자 중에는 요리사 생활을 하다 나이 들어 은퇴 후 7~8년 전 고향인 이곳 마을에 정착하고 1년여 년 전 마을 이장을 맡아 성실히 봉사하던 부부도 있었다.

2명의 실종자를 더 찾아야 하지만, 폭우가 그치지 않고 토사가 추가로 붕괴할 우려가 있어 구조 당국은 수색을 날이 밝은 이후로 미뤘다.

날이 어두워 구체적인 사고 원인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마을 주민들은 사고가 마을 뒷산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마을 뒷산 너머에 국도 15호선 전남 화순 방향 도로를 확장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데, 그곳에 쌓아 놓은 토사가 넘어왔다는 것이다.

'우르릉쾅' 산 넘어온 토사 더미에 새내기 귀촌이장 부부도 참사
도로를 확장하려고 계곡에 토사를 쌓아 올려놨는데, 그게 연일 내리는 폭우에 약해져 산을 타고 넘어와 마을을 덮쳤다고 주민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한 주민은 "2~3일 전 도로 확장 공사 현장에서 발파 작업을 하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구조 당국은 우선 날이 밝는 대로 실종자 수색 작업을 진행하고, 이후 사고 원인을 조사할 계획이다.

추가 산사태 우려에 마을 주민 30명은 이웃을 잃은 슬픔을 나눌 새도 없이 주변 초등학교 강당으로 대피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은 타지의 자녀가 달려와 엎거나 이웃이 부축해 대피했다.

마지막까지 집에 남겠다고 고집을 피운 주민도 있었으나, 위험하다는 설득에 몸을 일으켰다.

대피소에서 주민들은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재난 물품을 지급받고도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슬픔이 번질까 남몰래 눈물을 훔친 한 주민은 "살갑게 지내던 이웃을 잃은 슬픔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느냐"며 "하늘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르릉쾅' 산 넘어온 토사 더미에 새내기 귀촌이장 부부도 참사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