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세유와 영화 '트랜짓'

1940년 6월 파리가 독일군에 함락되고 남프랑스에는 친나치 비시 정부가 수립된다.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유대계 독일인들은 다시 짐을 꾸려야 했다.

이들은 북쪽에서 밀고 내려오는 독일군을 피해 최남단 마르세유로 향했고, 이곳에서 다시 제3국으로 탈주를 모색했다.

피난 행렬에는 작가, 철학자, 사상가 등 명망가들도 많았다.

뒤쫓는 나치, 임박한 죽음에 대한 극심한 공포에 내몰린 이들에게 마르세유는 '최후의 도피처'였다.

[영화 속 그곳]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그중에는 수용소를 탈출한 사람들도 있었다.

유럽 대륙을 떠나 미국이나 남미로 가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비자를 받아도 배를 타려면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가야 했다.

그러려면 포르투갈과 스페인 통행비자도 필요했다.

비자가 있다 해도 비시 정부가 출국 허가를 내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결국 다수가 불법적으로 프랑스 국경을 넘었다.

다양한 방법의 월경 시도가 있었다.

수용소에서 탈출한 한 유대계 독일인 가족은 출국 심사가 허술해진 틈을 타 몰래 기차를 타고 리스본으로 갔고, 그곳에서 뉴욕으로 가는 배를 타는 데 극적으로 성공했다.

탈출에 실패한 사람도 많았다.

한 철학자는 걸어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 입국을 시도했다.

스페인과의 국경 앞 마을에 도착한 순간, 그는 조금 전 국경이 차단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좌절한 그는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화 속 그곳]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리스본을 통해 탈출해 미국에 정착한 사상가가 바로 한나 아렌트, 피레네산맥을 넘다가 자살한 철학자는 발터 벤야민이다.

벤야민은 마르세유에서 아렌트를 만나 '역사철학테제' 원고를 넘겼다.

실패와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듯이.
당시 마르세유의 거리를 배회하던 유대계 독일인 작가 중에는 안나 제거스도 있었다.

그가 쓴 자전적 소설 '통과비자'는 마르세유의 난민들 이야기다.

◇ 자유를 찾아 떠난 이들의 도시
마르세유는 당시 독일의 통제를 받지 않는 유일한 프랑스의 국제항구였다.

죽음의 그림자를 피할 수 있는 마지막 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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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늘 처음과 통하며, 출구는 언젠간 입구가 된다.

기원전 600년경 터키인들이 교역항으로 건설한 마르세유는 지금껏 프랑스 유행과 첨단의 통로이자 출발점이었다.

1943년 1월 미처 탈출하지 못한 유대인 4천명이 비극적으로 체포된 최후의 도시지만, 1950년대 이후엔 수백만 명의 북아프리카 이주자들이 프랑스에 입국할 때 거치는 관문이 됐다.

프랑스의 국가(國歌) '라 마르세예즈'는 프랑스 혁명 당시 공화국이 선포되고 마르세유 민병대가 파리로 진격하며 부른 혁명의 행진곡이다.

지금도 축구장에서, 선창가에서 거센 발음으로 불리는 이 노래는 '자유'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마르세유의 현대사를 예고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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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점이 삭제된 영화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은 소설 '통과비자'를 '트랜짓'이라는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에는 파리를 탈출해 마르세유로, 마르세유에서 다시 미국이나 멕시코로 떠나려는 많은 난민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게오르그(프란츠 로고스키 분)도 그중 하나다.

작가인 남편을 찾아 헤매는 아내, 키우던 개 때문에 승선이 연기된 중년 여성, 승선 직전 심장마비로 쓰러진 음악가, 검문에 걸려 강제로 연행된 사람 등 다양한 사연을 지닌 난민들은 초조하게 비자와 출국 허가증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영화 속 그곳]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공포와 고독에 지친 사람들은 누구든 붙잡고 자기가 겪어온 일들을 얘기하고 싶어 한다.

항구에는 저마다의 간절한 사연과 이야기들이 넘쳐흐른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에 시대적 배경이 없다는 점이다.

'파리가 봉쇄되고 있다', '독일군이 진격하고 있다', '마르세유로 가야 한다' 등 처음부터 영화의 대사는 확연히 2차 대전을 가리키는 듯하지만, 사람들의 복장, 도로의 차들이 보여주는 시대는 현대다.

감독은 원작에서 시점을 삭제했다.

2차대전 배경 역사물이라는 안전판을 거부한 감독은 '과거'일 것이라는 관객의 착각을 유도하면서 '현재'를 강하게 고발하고 있다.

난민 문제는 현실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영화 속 그곳]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 두 가지 선택지
영화에선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 중 누가 더 먼저 상대를 잊을까?"라는 질문이 반복된다.

마르세유를 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던져지는 이 물음은 망명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음직 하다.

생각해본 적이 없더라도 앞으로 기회는 충분할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떠나거나 남거나 두 가지 선택지를 끊임없이 강요받기 때문이다.

영원히 떠나기 전까지 우리는 매 순간 누군가를 떠나거나 누군가에게 남겨진다.

그것은 떠난 자가 되어 기억을 떨치고 살아갈 것인가, 남겨진 자가 되어 기억을 붙잡고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시점의 소거를 통한 난민 문제 고발로 시작한 영화는 자연스럽게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라는 인간 실존의 문제로 귀결하고 있다.

[영화 속 그곳]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8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