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령산맥 끝자락의 명산 산책 코스

충청남도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칠갑산은 대중가요 '칠갑산'으로 널리 알려진 산이다.

가난했던 시절을 대변하는 슬픈 노랫말은 칠갑산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낸다.

[걷고 싶은 길] 칠갑산 정상에 오르는 편안한 산장로

그러나 굳이 그런 사연이 아니더라도 청양군에 위치한 칠갑산은 탐방해볼 만한 명산이다.

차령산맥 끝자락이다.

주봉인 칠갑산(해발 561m)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능선에는 제2봉인 삼형제봉(해발 544m)이 있다.

산세가 험해 '충남의 알프스'라는 별명도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변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이곳엔 울창한 숲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중 인지도로 치자면 '국민 산'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칠갑산 정상에 편하게 오를 수 있는 길이 있다.

칠갑산 산장로다.

청양군청 홈페이지에는 칠갑산 등산로 9개 중 하나로 표시돼 있다.

등산로이지만 정상 직전의 가파른 길 100∼300m 구간을 빼면 평지 길이 무색할 정도로 길이 평탄하고 넓어 걷기 좋은 길이다.

산장로는 경사가 평균 10% 정도로 완만하다.

칠갑산 등산로 중 제일 오르기 쉬운 길로 꼽힌다.

산장로는 칠갑산도립공원 주차장이나 칠갑광장에서 시작해 칠갑산천문대∼자비정∼정상으로 이어진다.

칠갑산도립공원 주차장에서 시작한다면 편도 4㎞, 칠갑광장에서 출발한다면 편도 3㎞ 정도다.

옛 칠갑산장 자리인 칠갑광장은 주차 공간이 많지 않다.

칠갑광장에서 출발한 우리는 쉬엄쉬엄, 이곳저곳을 탐방하면서 올라가서인지, 원점 회귀하는 데 3시간 반 정도 걸렸다.

보통 걸음이라면 산장로를 왕복하는 데 2시간 정도면 될 것 같다.

[걷고 싶은 길] 칠갑산 정상에 오르는 편안한 산장로

◇ 차령산맥 끝자락의 명산
차령산맥의 산들은 그다지 높지 않다.

칠갑산은 차령 끝자락인데 충남 중심부에서 가장 높다.

정상에 올라서면 주위의 크고 작은 산들이 모두 발아래다.

대치천, 장곡천, 잉화달천, 지천 등이 칠갑산에서 시작해 금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계곡이 깊고 급해 아흔아홉골이 있다고 한다.

칠갑산은 백제시대부터 진산(鎭山)으로 성스럽게 여겨져 이곳에서 제천의식이 행해졌다.

산 이름은 천지만물을 뜻하는 '칠'(七) 자와 싹이 난다는 뜻의 '갑'(甲) 자가 합해져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다.

이 설에 따르면 칠갑산은 생명의 시원이라는 뜻을 가진다.

또 이 산이 정상에서 일곱 군데로 뻗어났고, 깊은 계곡들이 휘돌아가며 명당 일곱 개를 만들었다는 데서 '칠갑'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명도 있다.

칠갑산에는 백제의 얼과 혼이 서려 있음을 산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다.

칠갑산은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에 속한다.

칠갑산에는 산장로 외에도 사찰로, 천장로, 칠갑로 등 8개 등산로가 더 있다.

주민과 등산객에게 사랑받는 길은 산장로, 천장로, 사찰로이다.

천장로 구간에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긴 출렁다리(207m)가 있다.

출렁다리는 중간 부분을 지날 때 상하좌우로 30∼40㎝나 흔들려 짜릿함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사찰로 구간에는 850년 신라 문성왕 때 지어진 고찰 장곡사가 있다.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한 덕에 외적과 도적의 침입을 적게 입은 결과 국보 2점, 보물 4점 등 문화재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건축 형태와 축조 시대가 서로 다른 대웅전이 2개 있는 사찰로 유명하다.

◇ 콩밭 매는 아낙네야∼
칠갑광장에는 칠갑산도립공원사무소, 식당 등 편의시설을 갖춘 건물이 있다.

광장 한편에는 조선 말기 문인이자 학자, 의병장이었던 면암 최익현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선생은 1873년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

1876년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자 도끼를 들고 광화문 앞에 나가 조약이 부당하다며 일본 사신의 목을 베라는 상소를 올렸다.

이른바 '도끼 상소'다.

이후 청양에 와 나라를 근심하며 지내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6년 74세에 의병을 일으켰다.

관군과 대치하게 되자 동포끼리 싸울 수 없다며 스스로 체포돼 일본 대마도에 이감됐으나 '왜놈 땅에서 난 곡식은 먹지 않겠다'며 단식하다 그곳 감옥에서 순국했다.

청양 목면에는 그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자 유물관인 모덕사가 있다.

[걷고 싶은 길] 칠갑산 정상에 오르는 편안한 산장로

칠갑광장을 지나면 칠갑산 노래비와 콩밭 매는 아낙네 동상이 나온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노래 '칠갑산'의 가사다.

조운파 선생이 지은 이 노랫말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전종채 청양군 문화관광해설사는 전했다.

가난을 못 이겨 늙은 홀아비에게 열여섯살 딸을 시집보낸 홀어미의 눈물겨운 얘기를 담았다고 한다.

노래비에서 자비정까지 약 2㎞ 구간에는 '칠갑산 어머니의 길'이라는 표시판들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었다.

이 표시판들에는 자식을 낳고 기르고 결혼시키면서 기뻐하고,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모정이 글과 그림으로 표현돼 있다.

노랫말의 사연을 설명하면, 가난으로 고생했던 어린 시절이나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이는 탐방객이 드물지 않다고 한다.

노래비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칠갑산천문대가 나온다.

'스타파크'라고도 불리는, 일반인을 위한 천문우주 테마과학관이다.

칠갑산은 그 이름이 만물의 근원을 의미하는 만큼 우주를 이해하고, 천체의 신비를 관측하는 데 더없이 좋은 장소가 아닐까 싶다.

천문대에는 국내 최대 구경급인 304㎜ 굴절망원경, 360° 회전 가능한 7m 원형돔이 있다.

[걷고 싶은 길] 칠갑산 정상에 오르는 편안한 산장로

◇ 완만한 오르막, 장쾌한 정상
산장로는 워낙 걷기에 좋아 등산로 같지 않고 도시의 큰 공원 같은 느낌을 준다.

바닥에 흙과 잔돌이 적당히 섞여 있어 발바닥에는 딱딱한 땅의 충격이 아닌 기분 좋은 쿠션감이 느껴진다.

노약자들도 그다지 힘들 것 같지 않았다.

실제로 많은 어르신이 이 길을 산책한다고 한다.

칠갑산탐방로 안내서는 산장로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산책코스'라고 설명했다.

참나무, 벚나무 등 여러 활엽수가 우거져 여름인데도 무덥지 않았다.

산장로는 1973년 칠갑산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뒤 조성된 길이다.

산비탈을 깎아 좁은 오솔길을 넓히고 길 양쪽에 벚나무를 심었다.

덕분에 수령 50년가량의 키 큰 벚나무 터널이 곳곳에 만들어져 있었다.

길 아래 비탈은 적잖이 가파르다.

걷기 좋은 길은 칠갑광장에서 2㎞ 정도 떨어진 자비정까지 이어진다.

자비정은 백제의 산성 자비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세워진 정자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자비성에 관한 기록이 있다.

'산성의 나라'라고 불리는 백제에서 자비성은 정치·군사적으로 요충지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자비정은 1998년에, 칠갑산을 상징해 칠각정자로 만들어졌다.

자비정을 지나면서 길은 약간 가팔라지고 울퉁불퉁해진다.

600∼700m를 더 걸으면 정상에 오르기 위한 마지막 구간인 계단이 나온다.

341개 계단이다.

계단 중간에 3개의 쉼터가 설치돼 있었다.

쉼터는 칠갑산 풍광을 감상하는 장소로도 그만이었다.

계단이 싫다면 옆으로 나 있는 흙길로 가면 된다.

정상에 이르는 흙길의 거리는 약 300m다.

칠갑산은 3만3천㎢로, 여의도 면적의 4배에 가까운 큰 산이다.

정상은 꽤 널찍했다.

나라의 안녕과 통일을 기원하는 작은 제단,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돼 있었다.

멀리 서쪽으로는 휘돌아가는 금강이, 동쪽으로는 계룡산이 아련하다.

맑은 날에는 서해까지 보인다고 한다.

사방이 확 트인 정상에서 보는 파노라마는 장쾌한 감동을 선사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8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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