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김행숙 시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나만의 언어' 만든 기억들의 변주

올해 데뷔 21년 차를 맞는 김행숙 시인이 여섯 번째 시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문학과지성사)를 출간했다.

김 시인은 2000년대 시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킨 미래파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이다. 과감한 시적 실험과 예술을 향한 끈질긴 질문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해왔다.

새 시집에 수록된 53편은 2014년 출간한 《에코의 초상》 이후 쓴 시들이다. 지난 6년간 시인 스스로 신체적 어려움을 겪으며 ‘글쓰기’란 숙명에 대해 성찰해 왔다는 김 시인은 ‘진정한 말의 가능성’을 끈질기게 모색한 끝에 조금씩 찾은 활기를 시집을 통해 풀어냈다고 한다. 시집에서 화자인 심부름꾼 k(김행숙 시인)는 ‘우리가 잘 아는 낯선 이야기들’을 들려줌으로써 글쓰기에 대한 숙명을 구체화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시를 통해 언어적 숙명을 찾는 여정 속에서 시인이 찾았던 열쇠는 ‘기억’이었음을 고백한다. ‘내 기억이 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나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그래서 나는 무엇인가’라며 나를 이루고 있는 기억과 내가 구사하는 말이 ‘내 것이 아님’을 직시한다.

김 시인은 카프카, 괴테, 배수아, 기형도 등의 작품 속 여러 텍스트 가운데 자신만의 언어를 이루게 한 기억을 발견하고 이를 다양하게 변주한다. 소설 《변신》 속 카프카의 자전적 고백을 새롭게 변주한 시들이 인상적이다. 시인은 ‘나는 완벽한 벌레의 꿈’(변신)이라고 하거나 ‘글과 꿈이 뒤바뀌는 건 다반사’(카프카의 침상에서)라며 거울에 얼굴을 비춰본 소설 속 주인공 그레고리 잠자를 시인 자신과 함께 서 있게 한다. 문학평론가 박슬기 씨는 “김 시인은 끝없이 변신하면서 자기 자신을 영원히 지워나가는 자”라며 “시집을 통해 시 쓰기란 자기의 존재를 거는 모험이자 그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유일한 길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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