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스트 이영희, '화가 서용선과의 대화' 출간
'예술적 동지'의 대화…이영희가 묻고 서용선이 답하다
"서용선 작가가 잘 그리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다른 화가와는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려요.

어떤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죠."
갤러리스트 이영희(70)는 10여년간 전시를 열며 인연을 이어온 서양화가 서용선(69)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오랜 세월 그림을 매개로 소통하며 '예술적 동지'로 신뢰를 쌓은 관계이기에 가능한 솔직한 평가다.

서용선은 단종과 사육신에 관한 역사화와 도시와 인간 군상을 그린 도시화 작업을 주로 해왔다.

강렬한 색채와 굵은 선으로 특유의 화풍을 만들어낸 그는 2008년 작품에 전념하겠다며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직도 스스로 내려놓았다.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고 2014년 이중섭미술상을 받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인정받았다.

2006년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에 리씨갤러리를 연 이영희는 서용선 작업실에서 본 소나무 그림에 깊은 인상을 받아 풍경화 전시를 제안했다.

서용선은 20대였던 1978년 국전에서 소나무 그림으로 상을 받기도 했지만, 당시 풍경화는 익숙지 않았다.

2008년 본격적으로 풍경 작업을 시작한 서용선은 2009년 리씨갤러리에서 연 '산(山)·수(水)' 전을 시작으로 지리산, 오대산 등의 풍경화 전시를 계속했다.

이영희가 풍경화라는 새 장르를 열도록 이끈 셈이다.

'화가 서용선과의 대화'(좋은땅 펴냄)는 그렇게 인연을 이어온 두 사람의 대화로 서용선의 삶과 작품세계를 풀어낸 책이다.

이영희가 작가의 예술관과 작품에 영향을 준 기억과 생각 등을 묻고 작가가 진솔하게 답한 대화록이다.

출간을 앞두고 만난 서용선은 "현대미술을 추구하는 작가에게 풍경화는 상업적인 쪽과 손잡는 느낌도 있었고, 역사화와 인물화를 그리는 작가에게 풍경은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었다"고 처음 풍경화 전시 제안을 받았던 때를 떠올렸다.

그는 "하지만 나름대로 풍경화를 언젠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라며 "전통적인 풍경화는 현대미술에서는 잠시 잊혔지만, 다시 살려야 하는 장르"라고 덧붙였다.

이영희는 "서용선은 철저하게 작가의 삶을 평생 살아온 분"이라며 "끝없이 궁금함을 가지게 하는 작가"라고 말했다.

그는 "책이 작가 예찬론이 되지 않도록 신경 썼다"라며 "작품보다는 작가의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들려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서용선은 "작가 자신도 완전한 신념을 가지고 그림으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남의 작품을 이해한다는 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라며 "10여년간 내 작품을 지켜본 체험을 바탕으로 한 인터뷰로 단편적으로나마 설명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71쪽 분량으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일상적인 삶의 대화를 통해 작가의 예술세계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난해한 미술 이론과 미술사를 끌어들인 대담집과 구별된다.

정릉 산동네 방 한 칸에 여섯식구가 살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던 어린 시절부터 도시와 역사,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과 작업 계기, 예술관과 방향성까지 폭넓은 이야기를 나눈다.

지난봄 뉴욕에 있던 서용선에게 이영희가 전화를 걸어 대화가 시작됐고, 작가가 귀국한 후 자가격리 기간 매일 두시간씩 통화가 이어졌다.

이후 여러 차례 만남을 통해 정리했다.

책에서 서용선은 "어린 시절의 가난함에서 오는 일종의 분노 같은 게 있다"라며 "그리고 복잡한 도시의 갑갑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본능, 사람을 조이는 듯한 도시의 묵직함을 파괴하고 싶은 저항의식, 그래서 화면을 저항의 대상으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물 얼굴 등에 붉은색을 쓰는 그는 "빨간색을 더 빨갛게 표현하고 보편적인 질서와 아름다움을 해체하고,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나면 조금 숨이 쉬어진다"라고도 했다.

자연 풍경에 대해서는 "지금은 자연이라는 것이 나와 하나라는 일체감이 든다"라며 "어느 날 문득 내 가슴속으로부터 자연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온다.

산에도 가고 싶고, 자연에 대해 터득한 감성으로 자연의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