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끊기 어렵더라" 조선 숙종대 문신 엄경수 '부재일기' 국역
조선 숙종대 문신 엄경수(嚴慶遂·1672∼1718)가 쓴 '부재일기'(孚齋日記)는 당대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사료로 높이 평가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총 8권으로 소장된 부재일기에는 엄경수가 과거 급제한 이듬해인 1706년 승문원에 들어간 때부터 사망한 1718년까지의 얘기가 담겨 있다.

가족들이 모여 시를 짓는 모습, 처음 관직에 나아가 치러야 하는 신고식인 '면신례'(免新禮)의 괴로움, 서울 양반들의 문화와 서울의 풍광, 벼슬에서 쫓겨난 양반의 궁핍한 생활, 역사적 인물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 정치적 논란이 된 사건의 뒷이야기와 세간의 소문 등 다양한 얘기가 실렸다.

그 중에는 담배의 해악을 깨닫고 형제와 친척과 함께 금연을 시도했으나 결국 모두 실패한 개인적 경험담도 있다.

엄경수는 "이 식물(담배)은 남쪽에서부터 들어온 지 백년에 즐기지 않는 사람이 없어 거의 온 나라에 두루 퍼졌고, 장사꾼은 이 물건으로 재화를 벌어들이니 그 형세로 보아 영원히 세상에 유통되어 금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썼다.

그는 "담배를 오랫동안 피우면 신장이 상하고 다리가 물러지며, 눈이 어둡고 정신이 혼미하여지니, 바로 수명을 줄어들게 하는 물건으로, 도움이 되는 점은 하나도 없다"라고 담배의 해악을 지적했다.

그러나 "모든 근심과 걱정, 무료함과 불평이 마음속에 있으면 이것을 의지하여 물리쳐 떨쳐내며, 엄동의 새벽 추위 및 길을 오가는 나그네의 얼굴에 서리가 맺히고 얼음이 가득한 것이 이것을 의지하여 따뜻하게 되며, 시인이 시 구절을 찾고 주인이 손님을 대접하는 등 모든 일에 이것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담배의 매력을 설명했다.

금연을 결심한 엄경수는 "이것을 멀리하려 하나 곧바로 가까이하게 되며 끊으려 하나 곧바로 친히 하게 되니 큰 역량이 없으면 끝내 목적 달성을 할 수 없다.

심하구나! 사람이 굳게 지킴이 없는 것이 이와 같을 것이다"라고 썼다.

엄경수는 '담배를 끊기로 한 약속'이라는 글을 기록하면서 금연 의지를 다졌으나, 결국 그 결심은 오래 가지 못했다.

해당 글의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금연 실패담이 실려 있다.

"며칠 뒤에 내가 먼저 약속을 어겼고, 한 달 뒤에 막내아우 아형이 다시 그 뒤를 이어 약속을 어겼다.

몇 달 뒤에는 수부 아재가 홀로 약속을 지켰지만, 또 점차 담배를 가까이 하기를 면하지 못하였다.

"
서울역사편찬원은 부재일기를 국역해 출간했다고 31일 밝혔다.

국역본은 3책으로 나왔으며, '서울책방'(store.seoul.go.kr)에서 권당 1만5천원에 구매할 수 있다.

8월부터는 서울역사편찬원 홈페이지(hitory.seoul.go.kr)에서 전자책으로도 열람할 수 있다.

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은 "국역 부재일기는 정사(正史)와 관찬(官撰) 사료에서 볼 수 없었던 조선시대 서울 사람의 생활문화상을 보여주는 좋은 사료"라고 설명했다.

엄경수는 공조·예조판서를 지낸 엄집(嚴緝·1635∼1710)의 둘째 아들로, 34세에 문과에 급제해 관료로 일하던 중 당쟁에 휘말려 소론의 입장을 대변하다가 관직에서 쫓겨난 후 숨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