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미술관서 신작 3점 등 약 70점 전시
고독과 불안 속 느껴지는 온기…팀 아이텔 개인전
한 남녀가 어두운 실내공간 벽 사이로 보트를 타고 나아간다.

이들 앞으로 보이는 흰 공간은 마침내 마주하는 희망일수도, 더 나아갈 곳 없는 벽이나 낭떠러지일 수도 있다.

뒷모습만 보여 보트에 탄 이들의 표정을 알 길이 없다.

불안함과 긴장감이 맴돌지만, 역경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노를 젓는 남녀가 무사하기를 바라게 된다.

독일 출신 화가 팀 아이텔(49)의 대표작 중 하나인 '보트'(2004)다.

신작 '시퀀스(커플)'(2020)에는 흰 벽 사이로 검은 통로가 이어진다.

이중노출로 사진 촬영을 한 듯 팔짱 낀 남녀가 걸어가는 뒷모습이 화면에 두 번 등장한다.

역시 인물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공간 속으로 향하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팀 아이텔은 이처럼 추상적인 배경과 알 수 없는 인물들을 통해 이야기를 열어놓고 관객을 작품으로 끌어들인다.

지난 7일 대구미술관에서 개막한 개인전 '무제(2001-2020)'는 신작 3점을 포함해 2001년부터 2020년까지 그가 작업한 작품 약 70점을 선보인다.

보트 외에 '검은 모래'(2004), '오프닝'(2006), '푸른 하늘'(2018) 등 대표작과 그의 그림의 모티프가 된 사진 370여장, 작품에 영향을 준 서적 30여권도 소개한다.

다작하지 않는 팀 아이텔은 1년에 10~12 작품 정도만 제작한다.

수가 많지 않은 데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어 대규모 전시가 쉽지 않다.

1년여의 준비과정을 거친 이번 대규모 전시는 8개국 50여 곳 소장처의 협조로 이뤄졌다.

파리에서 격리된 생활 중인 작가가 '시퀀스(커플)'와 함께 내놓은 신작인 '멕시코 정원' 연작 2점은 코로나19가 야기한 고독과 단절을 은유한다.

그림 정중앙에 한 사람이 뒷짐을 지고 정원 풍경을 내다보고 있다.

인물과 정원 사이 정체 모를 구조물이 틀처럼 그림을 감싸고 있다.

여기까지는 두 그림이 거의 같지만, 화면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에 차이가 있다.

첫 그림에는 오른쪽 구석에 여성의 옆모습이 보인다.

두 번째 그림에서는 그가 가운데로 이동해 뒷짐 진 사람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림 왼쪽에는 또 다른 인물의 뒷모습 실루엣이 비친다.

그림에서 얼굴이 보이는 인물은 화면 오른쪽에 있던 여성뿐이지만, 눈을 감고 있다.

두 번째 그림에서도 여전히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결국 화면 속 인물들은 서로 거리를 두거나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철저히 격리되고 단절된 상태다.

구 서독 레온베르크 출신인 팀 아이텔은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고 동독지역이었던 라이프치히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현재 독일 현대회화를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뉴-라이프치히파 작가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추상과 구상,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작품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정적을 이끈다.

그 속에서 작가 혹은 특정인의 이야기를 전하지 않고 관객이 사색하도록 한다.

서늘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그의 작품은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 우울을 느끼게 한다.

다만 관객들은 그의 작품을 보면서 감정을 공유하고 공감한다.

이를 통해 왠지 모를 따뜻함과 위로마저 얻게 된다.

유명진 대구미술관 전시기획팀장은 "팀 아이텔의 작품에는 차갑고 도시적인 공간에도 반드시 사람의 형상과 움직임을 통해 휴머니티가 나타난다"라며 "아무리 차갑고 외로워도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18일까지.
고독과 불안 속 느껴지는 온기…팀 아이텔 개인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