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뻔한 생각은 이제 그만"…세종의 창조적 리더십
낮과 밤의 시간을 측정하는 천문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로켓의 기원이 되는 신기전(神機箭)…. 조선 세종시대 나온 발명품이다. 이 시기 과학기술 발전사는 서구 르네상스 시대 못지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인이 편찬한 《과학사기술사사전》은 1400~1450년 세계 각국의 창조적 유산을 한국 21점, 중국 4점, 일본 0점, 유럽과 이슬람을 합쳐 19점으로 기록했다.

경영전문가 이홍 광운대 교수는 저서 《언박싱》에서 “세종시대는 인류사의 위대한 창조기였다”며 “세종은 자신과 신하의 아이디어를 끌어올리고 통합해 위대한 결과물들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세종은 최고 권력자인 왕으로서 자칫 빠지기 쉬운 생각의 굴레(박스)에 갇히지 않고, 여러 가지 다른 생각을 받아들였고, 종국에는 신하들의 생각까지 바꿔놓았다”고 했다.

저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열쇠를 ‘세종식 생각법’에서 찾아낸다. 책 제목인 ‘언박싱’은 경험에 갇힌 생각을 꺼내는 작업이란 의미다. 그는 “대부분의 리더는 자신의 성공 경험을 믿고, 그것을 바탕으로 상황을 판단하지만, 그 경험은 한정되고 제한된 것이어서 변화하는 세상에는 통하지 않는다”며 “뛰어난 리더들도 세월이 흐르면서 상투적인 생각에 갇히고 만다”고 강조했다.

저자에 따르면 세종은 왕이었지만, 자기중심성에 갇히지 않았다. 그는 주위의 생각이 유입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두고 생각의 세계를 넓혔다. 세종의 위대함은 ‘다름’을 배척하지 않고 다른 것들과 섞어 창조한 데 있다. 태종의 국상 중에 과거를 봐야 하느냐 여부를 두고 중신 사이에 논란이 일어났을 때였다. 세종은 찬반 양측의 의견을 절묘하게 절충했다. 시험을 간략하게 보는 방안을 규정한 《속육전》을 근거로 사서삼경을 통째로 외워야 하는 강경시험은 보지 말고, 논술을 보는 제술만 실시하라고 명했다. 세종은 각종 사안에 대해 신하들에게 열린 질문을 하고, 다양한 의견을 섞어 새로운 방안을 찾아냈다.

생각의 세계를 열어두면 창조성이 증가한다. ‘생각’ 위에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입된 생각을 통해 기존 시각을 되돌아보며 건전한 의심을 하게 된다. 그것이 언박싱의 해법이다. 저자는 “세종의 창조적 생각법은 어떤 현대이론보다 뛰어났다”며 “세종의 방법을 통해 현대 리더들이 자신과 조직원의 생각을 ‘언박싱’하는 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