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연 "힘겹게 여름 언덕 오른 사람에게 시원한 그늘 되길 바라며 詩 썼죠"
2012년 ‘창비신인시인상’으로 등단한 안희연 시인(사진)은 2015년 펴낸 첫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창비)로 그해 신동엽문학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2018년 온라인서점 예스24가 시행한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투표에서 시 부문 1위를 차지하는 등 국내 시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시인이다.

안 시인이 최근 세 번째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창비)을 펴냈다. 지난해 두 번째 시집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현대문학)을 펴낸 지 1년 만이다. ‘2020 오늘의 시’ 수상작 ‘스페어’를 비롯해 시 57편을 3부로 나눠 실었다.

시집은 제목처럼 한 사람이 여름 언덕에 오르는 과정을 시들에 담아 보여준다. 각각의 시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무더위와 목마름, 그 밖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과 싸우며 여름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생수를 내어줄 수 있는 손과 머리칼을 흔드는 바람, 의자와 나무 그늘이 돼준다.

먼저 삶의 바닥에서 느낀 세상의 슬픔을 보여주는 시들이 나온다. ‘쇠구슬 같은 눈물’(연루)로 차오르는 슬픔의 자리를 표현하고, ‘온 우주가 나의 행복을 망치려’(묵상) 드는 어둠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있는 삶 자체가 고통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어 ‘모든 피조물은 견디기 위해 존재하는 것//계속 가보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다’(구르는 돌)며 태도 변화를 모색한다. ‘더럽혀진 바닥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열과)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실패와 절망 끝에 남겨진 ‘나를 도려내고 남은 나로, 나머지의 나머지로서의 나로 오늘을 살아간다’(스페어)며 현재의 삶을 살기로 한다. ‘미로는 헤맬 줄 아는 마음에게만 열리는 시간’(추리극)임을 알기에 ‘너무 커다란 우리의/영혼을 조망하기 위해//뒤로 더 뒤로//멀리 더 멀리 가보기로’(자이언트) 결심한다.

안 시인은 “들끓는 마음을 가진, 어느 것도 용서할 수 없는, 한없이 공허한 채로 언덕을 걷고 있는 한 사람을 생각하며 시를 썼다”며 “마지막 장에 도착했을 땐 시원한 바람이 부는 그 언덕 위에서 세계를 바라보며 그 사람이 가진 무거웠던 것들이 가벼워져 다시 힘을 내 언덕을 내려가길 바랐다”고 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