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新왕실도자, 조선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 전시 설명회 참가자들이 ‘백자 채색 살라미나 병’을 감상하고 있다.  뉴스1
2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新왕실도자, 조선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 전시 설명회 참가자들이 ‘백자 채색 살라미나 병’을 감상하고 있다. 뉴스1
1888년 프랑스 3공화국 대통령 사디 카르노(재임 1887~1894년)는 조선 왕실 고종 임금에게 아름답고 화려한 백자 채색 꽃병인 ‘살라미나 병’을 선물했다. 2년 전 체결한 조불수호조약을 기념해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품 도자기를 보낸 것이다. 높이가 60㎝를 넘는 이 백자병은 프랑스 국립세브르도자제작소에서 만든 세브르도자기였다. 고대 그리스의 우아한 장식도기 모양을 본떠 제작한 것으로 백자나 청화백자에만 익숙했던 조선 왕실에 서구 도자기의 색다른 세계를 알려줬다.

고종은 답례로 12세기에 제작된 비색 청자 대접 두 점과 왕실 공예품인 ‘반화(盤花)’ 한 쌍을 보냈다. 반화는 놋쇠로 만든 받침 위에 각종 보석류로 나무와 꽃을 만들어 꽂은 조화 장식품이다. 이 답례품들은 현재 프랑스 파리 기메박물관과 국립세브르도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조선과 프랑스의 수교 상징인 ‘백자 채색 살라미나 병’이 국내 처음으로 공개된다. 국립고궁박물관이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여는 특별전 ‘신(新)왕실도자, 조선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에서다.

이번 전시에서는 살라미나 병과 필뤼비트 양식기 한 벌, 백자 색회 고사인물무늬 화병 등 그동안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근대 서양식 도자기 40여 점을 비롯해 프랑스·영국·독일·일본·중국에서 제작된 서양식 도자기 310점 등 총 400점의 유물이 소개된다.

총 5부로 구성된 전시는 근대 전환기 조선 왕실이 처했던 과도기적 상황과 당시 왕실 사람들의 사연을 궁정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들을 통해 조명한다. 1부에선 용무늬가 그려진 큰 백자 항아리인 ‘용준(龍樽)’과 모란무늬 청화백자 등 조선 왕실 청화백자를 전시하고, 2부에선 개항 이후 서양식 도자기가 왕실에 유입됐던 배경을 살펴본다. ‘오얏꽃무늬 유리 전등갓’ 등 1887년 전기 도입 후 궁중 실내외에 설치된 150여 점의 유리 등갓을 선보인다. 3부에선 ‘백자 채색 살라미나 병’을 볼 수 있다. 4부에선 창덕궁 희정당 권역에 남아 있는 서양식 주방을 그대로 본뜬 구조에 ‘철제 제과틀’, 러시아식 주전자인 ‘사모바르’ 등 각종 조리용 유물을 전시한다. 5부에선 만국박람회를 통해 세계 자기 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른 자포니즘 화병과 중국 페라나칸 법랑 화병을 만날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관계자는 “도자기는 당시 사회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도구가 될 수 있다”며 “조선이 서양식 건축물을 짓고 세계적으로 유행한 대형 화병으로 궁궐을 장식한 것은 근대적 취향과 문물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의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