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관절 수술로 4년간 활도 못 잡아…17일 코리안심포니와 협연

"클래식 음악 안에도 스토리가 있어요.

그곳에는 연주자의 이야기, 작곡가의 스토리들이 담겨 있죠. 음악 자체의 흐름에도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고 싶어요.

"
흔히 클래식 음악은 지루하다고 알려져 있다.

곡 길이가 일반적으로 긴 데다가 기악의 경우 집중할 만한 스토리가 없는 탓이 크다.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34)은 "오페라가 적어도 서양에서는 인기가 있는데, 가사, 즉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기악에는 이야기 자체가 아예 없는 걸까? 한수진은 지난 15일 예술의전당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기악에도 이야기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주자, 작곡자의 이야기뿐 아니다.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연주회에서 직접 해설을 맡기도 한다.

음악을 듣는 청중들의 상상력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해서다.

"에너지를 많이 쏟는 일이지만, 해설을 들려줬을 경우에 좀 더 관객들과의 공감대가 커지는 것 같아요.

"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클래식 음악에도 스토리가 있죠"
그가 유튜브를 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지난해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후 젊은 층을 중심으로 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작년 10월 출연한 영상의 누적 조회 수는 무려 450만건을 돌파했다.

일부 팬들은 유튜브를 해주면 좋겠다는 뜻을 알려왔다.

당시만 해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에 익숙지 않았던 한수진에게 유튜브는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그분들의 뜻이 정말 고마웠어요.

유튜브 활용법을 조금씩 배우며 어머니와 함께 영상을 올리면서 계정을 관리하고 있어요.

"
구독자 수는 6만5천명. 클래식 음악계 공룡인 예술의전당(약 5만명)보다도 많은 구독자다.

"댓글에 '치유'라는 단어를 많이 달아주세요.

저에게도 힐링이 되는 말입니다.

"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클래식 음악에도 스토리가 있죠"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지만, 이제 삼십 대 중반에 들어서는 한수진의 삶도 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

2살 때 가족을 따라가 영국에 정착한 그는 예후디 메뉴인 음악학교, 퍼셀 음악학교를 거쳐 옥스퍼드대(음악학)에 입학했다.

15세 때인 2001년에는 제15회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에서 2등을 차지했다.

한국인이 거둔 최고의 성적이었다.

지휘자 정명훈은 그를 가리켜 '하늘에서 내린 재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선생님들로부터 칭찬, 주위의 관심, 뛰어난 성적……. 인생은 순풍에 돛단 듯 수월하게 흘러갔다.

옥스퍼드대에서 학업과 연주회를 병행하며 폐렴에 걸리기도 했지만, 연주자로서의 성공은 손에 잡힐 듯했다.

중국 시장 데뷔 등 주요 연주들이 잇달아 예약됐다.

그러나 어린 시절 다친 턱관절 후유증이 성공을 앞둔 가장 결정적 순간에 온몸으로 퍼졌다.

턱에서 시작된 고통은 뒷머리와 허리를 거쳐 골반까지 이어졌다.

지하철을 타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에도 엄청난 고통이 뒤따랐다.

연주는 물론 일상생활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요 무대를 앞둔 20대 중반, 그는 수술을 결정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클래식 음악에도 스토리가 있죠"
그때부터 시련이 시작됐다.

첫 수술이 잘못돼 재수술과 추가 수술을 해야 했다.

기나긴 재활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가 산 인생의 6분의 1이 넘는 6년의 세월은 그렇게 바이올린 없이 흘러갔다.

4년 정도는 아예 바이올린 활을 잡지 못했고, 나머지 2년도 제대로 연습을 하지 못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부작용 때문이었다.

대중에게 점점 잊히는 동안 그는 통역도 하고, 레슨도 하고, 아버지 일도 도와주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없었던 시간에도 그는 배운 게 많다고 한다.

"연주를 못 해 무척이나 초조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악보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부분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됐어요.

통역 등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새롭게 도전해봤는데, 그 부분도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
그는 오는 17일 코리안심포니와 함께 무대에 선다.

국내 데뷔 무대를 함께했던 코리안심포니와 16년 만의 협연이다.

이 무대에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을 연주한다.

대면 공연은 아니지만, 코로나 시대에 랜선을 통해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긴 공백기 속에 악기를 잡지 못한 적도 있었고요.

지금은 제2의 인생을 사는 것 같아요.

음악을 보는 시선도 달라졌고요.

제 음악이 어떻게 변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내면이 바뀐 부분들이 있고, 그 부분은 제가 연주하는 음악에 반영되었겠죠. 예전에 같이 연주했던 분들도 아직 오케스트라에 계실 텐데, 그분들이 어떻게 보실지 궁금합니다.

"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클래식 음악에도 스토리가 있죠"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제 계획대로 된 게 단 하나도 없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쁜 일도 길게 보아 감사한 일이 된 거 같아요.

기적 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