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를 사랑한 선인들의 담백한 마음 담았죠"
“지금 한국의 차(茶) 문화는 지나치게 ‘원조 경쟁’에 치우쳐 있습니다. ‘한국식이 최고’란 편협적인 민족주의 시각에 사로잡혀 있죠. 정작 조선시대 학자들이 남긴 글에는 차를 사랑하는 담백한 마음만 담겨 있을 뿐입니다. ”

조선 지성사 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고전학자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사진)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정 교수는 유동훈 목포대 국제차문화산업연구소 연구원과 함께 《한국의 다서(茶書)》(김영사)를 지난 13일 출간했다. 조선 최초의 차 관련 문헌인 이운해의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 국가 주도의 차 무역을 제창한 이덕리의 ‘기다(記茶)’, 차 문화 전파에 앞장선 다산 정약용의 ‘걸명소(乞茗疏)’, 당시의 다도(茶道)를 소개한 초의 의순의 ‘동다송(東茶頌)’ 등 30편을 한 권에 모았다. 차를 주제로 한 조선 문인들의 글들을 찾아 원문을 싣고 풀이한 책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 교수가 조선의 차문화와 관련한 책을 낸 것은 2011년 《새로 쓰는 조선의 차문화》에 이어 두 번째다.

정 교수는 “당대 실학자들의 기록을 찾다 보니 차를 주제로 한 시와 편지, 논설들이 마치 고구마 줄기처럼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유교 사회였던 조선에선 차가 그리 유행하지 않았다”며 “18세기 청나라와의 교류가 잦아지며 중국에 자주 들렀던 사람들이 차를 즐기기 시작했고, 그 중심은 실학자들이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조선시대 땐 엽전 모양의 떡차를 마셨다”며 “잎차 형식의 복원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떡차는 찻잎을 찌거나 덖은 뒤 찧어 틀에 넣어 박아내 만든 것이다. 떡차를 마실 땐 차의 일부를 불에 살짝 그을린 뒤 해당 부분을 잘라내 가루로 만든 후 물에 넣어 끓인다. “당시 학자들의 문헌 여기저기서 떡차를 마셨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는 차를 잘 모릅니다만 ‘조선시대의 차는 잎차’란 편견을 고집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엄연한 기록이 있는데 그걸 먼저 봐야죠.”

그는 “독자들이 이 책을 차를 마시듯 천천히 즐기며 읽으면 좋겠다”며 “어느 편을 먼저 읽든 순서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다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한국의 다서》는《습정(習靜)》《다산과 강진용혈》《상두지(桑土志)》에 이어 올해 네 번째로 낸 신간이다. 그는 “올해 신간 출판이 몰린 건 맞지만 모두 몇 년씩 공들여 자료를 모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글을 많이 쓰는 비결로 2006년 자신이 낸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에 나온 ‘10강(綱) 50목(目) 200결(訣)’을 들었다. 10개의 큰 줄기를 세워 다섯 가지 방법론으로 배열하고, 하나의 방법론 안에 4개의 소제목을 다는 형식이다.

정 교수의 고전 번역은 읽기 쉽고 경쾌한 가락이 있다는 평을 받는다. 정 교수는 나이와 학력에 상관없이 자신의 글을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문장에 정성을 들인다. 그는 “문장을 쓴 뒤 소리내어 읽을 때 어색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을 쓰고 나면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지인 다섯 명에게 먼저 보여줍니다. 이들이 모두 내용을 이해하면 성공입니다. 읽는 사람에게 쉬워야 좋은 글입니다.”

그는 “좋은 글의 힘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며 “원문이 좋으면 번역도 좋고, 원문이 나쁘면 번역도 나쁘게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매일 문장을 체에 거릅니다. 우리말의 결을 잘 살려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죠.”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