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카메론의 SF 이야기'서 리들리 스콧 감독 밝혀

인공지능의 인간성 문제를 선구적으로 고찰한 SF 영화의 고전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1982). 개봉 당시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열렬한 팬이 늘어만 가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는 후반부 주인공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 분)와 복제인간(replicant) 로이 배티(룻거 하우어 분)의 옥상 격투를 꼽는 이들이 많다.

로이 배티가 추락해 죽을 위기에 놓인 데커드를 살려주면서 한 말은 시적이면서 철학적이다.

"난 너희 인간들이 믿지 못할 것들을 봤지. 오리온자리 어깨 너머 불타는 공격선. 탄호이저 문 근처 어둠 속에서 반짝이던 C빔. 이 모든 순간은 시간이 지나 사라지겠지. 빗속의 눈물처럼. 죽어야 할 시간…"
어떤 인간도 막지 못할 강한 힘과 지능을 가진 복제인간이지만, 로이 배티는 그의 창조주가 세팅해 놓은 수명의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그가 이 독백 후 죽고 그의 손에 잡혀 있던 비둘기가 풀려나면서 하늘 위로 날아가는 장면을 본 많은 사람은 이것이 복제인간에게 인간적인 감정은 물론 영혼이 있음을 암시한다고 느꼈다.

지금은 인공지능과 인간성의 관계가 진지한 철학적 논의의 주제이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인공지능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블레이드 러너' 불멸의 대사 배우가 직접 썼다
영화를 연출한 리들리 스콧 감독은 최근 번역 출간된 '제임스 카메론의 SF 이야기'(아트앤아트피플)에 실린 후배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촬영 전날 밤 배우 룻거 하우어가 이 대사를 직접 썼다고 털어놨다.

스콧 감독은 다른 영화에서 하우어를 보고는 그의 외모가 로이 배티 역을 맡기에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하고 네덜란드에 있던 그와 통화해 촬영에 합류하도록 했다.

스콧 감독은 마지막 촬영을 앞둔 새벽 1시 룻거가 "한번 써봤다"면서 내민 것이 그 대사였다고 회상했다.

"'난 너희 인간들이…'로 시작하는 대사를 읽는 순간 거의 눈물이 날 뻔했어요.

그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어서 제가 말했죠. '이대로 합시다'라고. 우리는 나가서 한 시간 만에 그 장면을 찍었어요.

"
그러나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인지 이 영화는 관객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스콧 감독은 "그 영화를 끝내고 해고당했다"고 씁쓸한 기억을 떠올렸다.

시간이 흐른 뒤 재평가를 받은 SF 영화라는 점에서 '블레이드 러너'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1968)와 흔히 비교된다.

카메론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역시 25년 만에 이익을 냈다"면서 "이 영화가 아마도 인공지능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느냐"고 질문하자 스콧 감독은 "'금지된 행성'(Forbidden Planet·1956)에 나오는 로봇 로비가 씨앗일 것"이라고 바로잡았다.

두 사람은 SF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SF의 뿌리인 문학이 위축되고 있는 것에 함께 아쉬움을 나타냈다.

카메론이 "요즘 너무 많은 SF 팬들이 영화나 TV, 대중문화, 게임 같은 걸 통해서만 SF를 접한다"고 지적하자 스콧 감독은 "책을 안 읽으니까…오늘날에는 영화를 만드는 우리가 소설가라고나 할까.

우리는 책을 대체하고 있지만 그건 정보를 얻는 게으른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리들리 스콧 감독과의 인터뷰는 미국 연예제작사 AMC의 6부작 TV 다큐멘터리의 일부로 제작됐다.

카메론이 리들리 스콧 감독 이외에 기예르모 델 토로, 조지 루카스, 크리스토퍼 놀란, 아놀드 슈워제네거, 스티븐 스필버그 등과 SF를 주제로 대담했다.

'제임스 카메론의 SF 이야기'는 여기에 더해 외계 생명체, 우주 공간, 시간 여행 등 이들이 대화한 주제에 관해 SF 분야 전문가들이 쓴 에세이 6편도 수록했다.

김정용 옮김. 224쪽. 4만2천원.
'블레이드 러너' 불멸의 대사 배우가 직접 썼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