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교육 맡을 때마다
후배들 눈빛이 뭔가 찜찜

자칫 '라떼' 될까 자기 검열
꿀팁 전수도 '멈칫'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경기 안성의 중소기업에 다니는 박 전무는 사내 교육을 할 때마다 고민에 빠진다. 교육 내용의 태반이 옛날얘기여서다. 후배 직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전부터 이어져 온 업무 방식, 과거 업무 사례 등을 세세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의 마음이 무거워진 것은 상사가 과거 경험을 후배 직원들에게 얘기하는 걸 비꼬는 ‘라떼는(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이 유행하면서부터다. 과거 얘기를 꺼낼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과거가 무조건 옳다는 게 아니라 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것인데도 눈치가 보인다”며 “‘라떼’ 때문에 사내 교육이 까다로워졌다”고 토로했다.

상사의 주된 업무 중 하나가 후배 교육이다. 대다수 김상무이부장은 열의를 품고 사내 교육에 임한다. 나중에 고생하지 않으려면 교육에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다. 하지만 라떼와 ‘꼰대’란 말이 돌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아무래도 후배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김상무이부장들의 토로다.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후배 직원들에겐 말 한마디를 할 때마다 눈치를 보지만, 정작 자신은 선배들에게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혼이 나기 때문이다. 달라진 사내 교육 분위기로 마음에 생채기가 생긴 김상무이부장들의 속사정을 들어봤다.
나만 예외인 ‘워라밸’
사내 교육 때마다 후배 눈치를 보다 보니 자신만의 노하우를 적극 알려주기 어렵다는 사연이 가장 많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김 상무는 최근 후배 직원들에게 “넌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리고 있다. 어렵게 터득한 ‘꿀팁’을 알려주는데도, ‘훈계질’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눈빛을 받은 기억이 있어서다. 김 상무는 “후배들 사이에서 꼰대로 낙인찍힐까 봐 걱정하게 된다”며 “같은 직장인으로서 경력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언을 해주는 것조차 꺼린다”고 말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현상도 후배들의 눈치를 보게 된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일을 빨리 제대로 익히려면 불가피하게 이른 출근이나 늦은 퇴근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교육하느라 출퇴근 시간을 제때 지켜주지 않으면 싸늘한 시선을 받는다.

유통 그룹 계열사에서 대외협력팀장을 맡은 최 부장에게 외부 관계자와의 저녁 미팅은 일의 연장이다. 수십 년 전 평사원일 때 홍보팀에 들어와 저녁이면 상사들을 따라 잘하지도 못하는 술을 마셨다. 그런데 막상 자신이 팀장이 되니 후배 직원들은 지인과의 약속, 운동 등을 이유로 저녁 자리를 피했다. 워라밸과 주 52시간 근로제가 중요해진 것을 알기에 지적을 하려다 말았다.

그렇다고 후배들의 ‘워라밸 대오’에 합류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미 다이어리엔 경영진, 임원들과의 저녁 약속이 꽉 차 있다. 후환도 두렵다. 최 부장은 “급한 일이 있어 약속에 빠진 적이 있는데 두고두고 핀잔을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교육 임하는 태도도 달려져
사내 교육에 임하는 후배 직원들의 태도에서 ‘격세지감’을 느낄 때도 있다. 정보기술(IT) 업체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는 박 상무는 매번 홀로 현장에 나간다. 올해로 임원 3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수시로 영업 현장에 가 사람을 만난다. 주말에도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현장을 찾아다닌다. ‘현장에 가지 않고선 제대로 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가 혼자 다니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몇 년 전 그가 속했던 팀의 후배들에게 “주말에 현장을 둘러보고 월요일 오전에 회의하자”고 했다가 ‘악덕 상사’로 찍혔다. 막내 직원은 인사부서에 다른 팀으로 보내달라고 ‘SOS’를 쳤다.

박 상무는 “그동안 내가 해온 일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모두 알려주고 싶었지만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져 안타까웠다”며 “그래도 이 방식이 맞다고 생각해 나 혼자라도 계속 현장에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에서 일하는 이 상무는 최근 신입사원 연수에서 사내 시스템 교육을 하는 담당 임원으로 배치됐다가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교육 종료 30분 전에 업무 숙지와 관련한 과제를 내줬는데 후배들이 “퇴근 시간까지 끝내지 못한 과제는 다음 교육 시간에 하면 되느냐”고 물었다. 이 상무는 남은 교육용 과제는 당연히 집에서 해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업무가 아니라 각자의 발전을 위한 과제라 그렇게 여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눈치가 보여서다. 이 상무는 다음날 교육 일정을 조정하기 위해 초과근무를 해야 했다.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김 부장은 얼마 전 들어온 신입사원에게 자신과 오랜 시간 관계를 쌓아오고 업무를 도와준 업계 사람을 두루두루 소개해 주려고 했다. 신입사원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팅과 점심 식사에 빠지는 일이 많았다. 가까스로 데려가도 대화 내용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다. 김 부장은 “최대한 많은 사람을 소개해 주고 싶은데 그런 마음을 잘 몰라주는 것 같다”며 “신입사원의 태도가 낯설고 서운하게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보고 양식까지 달라
젊은 직원들과 업무 방식이 달라 난감할 때가 있다.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송 부장은 최근 후배 직원에게 “업무 관련 주요 서류는 출력해 보관해 두라”고 말했다. 그러자 후배는 “클라우드에 백업하고 필요할 때 인쇄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송 부장은 “업무를 바라보는 태도, 업무 관심사뿐 아니라 일하는 방식도 세대 간 격차가 커서 따라잡기 힘들다”고 말했다.

S그룹에 다니는 김 부장은 후배 직원의 업무 보고를 받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회사 내에서 사용하는 보고 양식을 설명해 줘도 자료를 본인 취향대로 작성해 온다. 회사의 보고 양식이 고리타분하고 한눈에 보기에도 어렵다고 한다. 결국 김 부장은 후배 직원의 자료를 받으면 자신이 직접 수정한다.

김 부장은 “파워포인트와 엑셀을 잘 다루는 요즘 젊은 세대는 회사 보고 양식에 불만이 많다”고 했다. 이어 “보고용 자료는 대학에서 발표할 때 쓰는 자료가 아닌데도 자신들의 취향을 고집하다 보니 난감할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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