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표 "전체 역사 이해하게 하겠다" 약속

일본은 메이지 산업혁명유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당시 어떤 약속을 했을까.

2015년 6월 28일부터 7월 8일까지 독일 본에서는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가 개최됐다.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심사 및 결정도 이 기간에 진행됐다.

세계유산위는 세계유산협약에 따라 설립된 정부 간 위원회로, 세계유산 등재 유산을 심의해 결정하고 세계유산의 보호·관리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주체다.

21개 위원국이 모든 결정권을 가지며, 비위원국은 발언권도 없다.

당시 한국과 일본은 모두 위원국이었다.

중국의 경우 일본 산업유산에서 이뤄진 강제노역 관련 당사자였지만 위원국이 아니어서 아무런 발언도 할 수 없었다.

등재 추진 단계에서 이미 대립한 한일 양국은 회의 기간에도 조선인 강제동원 관련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하지만 두 나라를 제외한 세계유산위 19개 위원국은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고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합의하고 오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결국 7월 5일 세계유산위는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유산 23곳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를 최종 결정했다.

한일 양국은 막판에 극적으로 합의를 도출했고, 등재안은 세계유산위 위원국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일본산업유산 논란]② 세계유산 등재시 일본은 어떤 약속 했나
이날 일본 정부 대표단은 위원국 앞에서 지금까지도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는 발언을 한다.

이 발언은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 요약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일본 정부 대표는 우선 "일본 정부는 기술적·전략적 견지에서 내려진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ICOMOS)의 권고를 존중한다.

특히, 해석 전략(interpretive strategy, 해당 유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발전시켜 나감에 있어, 일본은 동 전략이 각 시설의 전체 역사(full history)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라는 권고를 충실히 반영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유네스코는 각국이 등재 신청한 후보군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 작업을 벌이는데, 이코모스는 문화유산 후보에 대해 현지 실사 및 조사를 담당하는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다.

자연유산 후보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담당한다.

일본 정부 대표의 발언 중 '전체 역사'란 구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등재신청 시 185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로 기간을 한정한 것에 대해 이코모스가 해당 유산의 전체 역사를 다루도록 권고한 것이다.

그리고 일본 측은 이 권고를 충실히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지는 발언은 더 중요하다.

일본 대표는 "보다 구체적으로, 일본은 1940년대에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로 노역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도 징용 정책을 시행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처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또 "일본은 정보센터 설립 등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이코모스가 권고한) 해석 전략에 포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즉, 일본 정부는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에서 조선인 강제노역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처를 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한 것이다.

세계유산위는 또 등재 결정문 각주를 통해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의 발표를 주목한다(take note)"고 명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