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문로 갤러리 에무에서 열리는 노세환 개인전에 전시된 ‘My Toes Are Free 001’.
서울 신문로 갤러리 에무에서 열리는 노세환 개인전에 전시된 ‘My Toes Are Free 001’.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사진, 설치, 영상 등으로 활동무대를 넓혀온 노세환(42)은 통념의 허를 찌르는 작가다. 사과, 브로콜리, 병, 바나나 등 익숙한 사물을 페인트에 담갔다가 꺼낸 모습을 사진으로 포착한 대표작 ‘Meltdown’에서는 사물이 녹아내리는 듯하다. 하지만 실은 녹는 게 아니라 굳어가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귀에 익은 속담도 그의 손에서는 유쾌하게 변형된다. ‘백지장을 맞들면 짜증난다’는 주제로 두 사람이 A4 크기의 종이를 맞들고 가는 행위를 연출했고, ‘구슬 서 말을 꿰어도 구슬이다’라며 실제 구슬을 꿰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콩과 팥을 직접 심어 기르면서 찍은 사진으로 ‘콩팥’ 시리즈를 만들기도 했다.

그가 이번에는 발가락에 주목한 작품을 선보였다. 서울 신문로 2가 갤러리 에무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온실 속의 노마디즘 My Toes Are Free’를 통해서다.

복합문화공간 에무의 지하 2층에 자리한 갤러리에는 발가락을 이용해 주전자에 담긴 차를 따르고, 가위로 꽃을 다듬고, 붓으로 색을 칠하는 사진이 걸려 있다. 가로 4m, 세로 2m짜리 대형 사진작품 3점, 발가락으로 칠한 회화 작품 4점을 포함해 평면작업 12점을 선보였다.

정말 이 모든 걸 발로 했을까. 사진을 위해 연출한 동작이 아닐까. 작품이 걸린 뒤편 벽에서 상영 중인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영상에서 발가락은 먼저 도마 위에서 퍼포먼스를 펼친다. 발레리나가 춤을 연습하듯 두 발의 발가락을 나란히 폈다가 오므리고, 세우고, 벌리는 동작이 이어진다. 뜨거운 김이 나는 도자기 주전자를 발가락으로 들어 작은 찻잔에 하나하나 따른 뒤 찻잔을 들어 손님 앞으로 밀어주기도 한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붓을 끼워 캔버스에 오렌지색을 칠한 작품들은 전시장에 걸려 있다. “손님이 왔다”며 셔츠의 단추를 채우고, 식칼로 사과를 자르는 시범까지 보인다.

작가는 왜 발에 주목했을까. 전시 제목의 영어는 ‘너무 바빠서 도와줄 수 없다’는 뜻의 영어 표현 ‘My hands are tied’를 비튼 것이다. 바쁜 손과 달리 발은 자유롭지 않은가. 그렇다면 발로라도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노 작가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범주를 미리 정해 놓은 데서 소통의 부재가 초래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누군가 나를 도와줄 의지가 있다면 ‘나의 두 손은 묶였지만 두 발은 자유로우니 그걸로 당신을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온실 속의 노마디즘’은 젊은 세대의 목적 없는 욜로(YOLO) 라이프에 대한 비판이다. 단순히 즐기는 차원의 소비적 노마디즘, 즉 ‘온실 속의 노마디즘’ 대신 억압적 관습을 거부하고 새로운 자유를 찾아나서는 생산적 노마디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 작가는 발가락 퍼포먼스를 통해 관습적 상식의 울타리와 통념의 장벽을 넘어서는 진정한 소통의 노마디즘을 설파하고 있는 셈이다. 전시는 7월 31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