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미술-무용 경계 넘나드는 예술가들의 열정
“예술의 역사는 상전이(相轉移·phase transition), 즉 국면 전환의 역사다. 역사를 다음 장으로 넘기게 하는 이종 간의 통섭이 그런 상전이의 동력으로 작용해왔다.”

예술철학의 대가인 이광래 강원대 명예교수는 신간 《미술과 무용, 그리고 몸철학》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특정 분야, 특정 장르의 울타리를 넘어 다른 분야로 용감하게 ‘가로지르기’를 한 사람들 덕분에 예술의 새로운 역사가 씌어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아우르는 통섭은 인적인 것과 물적인 것, 지적인 것과 정서적인 것, 마음과 몸의 인터페이스, 즉 이종 공유다.

미술과 무용의 인터페이스도 마찬가지다. 시각예술이자 공간예술인 두 장르는 ‘몸철학 위에 세워진 인터페이스 현상’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춤은 살아서 움직이는 회화”라고 바로크 시기 고전연구가인 장바티스트 뒤보스 신부는 말했다. 이사도라 덩컨은 산드로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에 도취한 나머지 “나는 이 그림을 춤출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한 번민으로 내게 주어졌던 삶의 사랑, 활력, 출산의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고 자서전 《나의 삶》에서 토로했다.

이종 교배 내지 이종 공유를 욕망했던 미술가들은 캔버스 위에 춤추는 뮤즈(혼)를 몸과 함께 펼쳐놓았다. 춤을 화면에 옮긴 보티첼리를 비롯해 한스 홀바인, 앙리 마티스, 에드가 드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페르낭 레제 등은 물론 파블로 피카소와 로버트 라우션버그처럼 아예 춤을 춘 화가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무용과 미술의 인터페이스는 르네상스 이후 진화를 거듭해온 주제다. 덩컨은 헬레니즘 이후 수많은 미술가가 그렸던 삼미신(三美神)을 춤으로 시도했다.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 무용과 다다이즘 미술의 독특한 협업 또한 시대를 반영했다.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내려면 남들이 하지 않는 것에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많은 예술가들은 위대함으로 향하는 여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용감한 예술가만이 그 여행을 떠난다”는 무용비평가 월터 소렐의 말을 저자가 전해주는 이유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