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전쟁을 불러온 것들, 전쟁이 불러온 것들
한국전쟁, 전장의 기억과 목소리

▲ 고백하는 사람들 = 김재웅 지음.
북한사 전문가인 저자가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까지 시기에 쓰인 북한 각급 기관 직원 879명의 자서전과 이력서, 이에 대한 상급자의 평정서를 바탕으로 당시 북한 사회의 실상과 주민들의 생활상을 재구성한다.

이들 자료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 진주했던 미군이 노획해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보관돼 있었다.

해당자들의 신분은 김일성종합대학을 비롯한 대학교수와 중학교 교사, 배심원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참심원, 인민군 하사관과 병사들, 조선중앙통신사 직원 등으로 다양했다.

해방 직후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했을 때 공산청년동맹과 적위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주민들의 피신을 유도했을 뿐만 아니라, 재산과 부녀자들을 잘 간수해야 한다는 경고를 하는 등 공산 세력이 당초에는 소련군에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의외의 기술이 나온다.

1947년 김일성종합대학에 임용 예정이었던 전문가 중 남한 출신이 절반 가까운 44.4%에 달했다거나 일본군에 징집돼 대만에 주둔해 있던 조선 출신 병사 1천300여명이 '인민의용군'을 창설하고 일본군 및 중국국민당 중앙군과 협상해 집단 귀국했다는 기록도 발견된다.

머슴 출신인 한 주민이 토지개혁으로 논 800여 평을 불하받고는 얼마나 기뻤던지 '애국미' 여섯 가마니를 헌납했다거나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 러시아어 서명을 만드는 일이 유행이었다는 대목에서는 당시 북한의 생활상을 일부 엿볼 수 있다.

북한이 일제 잔재 청산에 철저했다는 일각의 인식과는 달리 일제에 협력한 전력을 지닌 공직자 출신, 특히 전문직 종사자들은 악질적 친일 행위에 연루되지 않았다면 기존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대목도 나온다.

일본 비행대 조종사 출신이 북한 공군의 모태가 될 신의주 조선항공대에 입대하거나 일본강점기 때 각종 공직을 거친 강원도 평강축산전문학교 교장이 해방 후 유임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저자는 "'지배층의 언어'나 '지도자의 언어'가 아닌 대중 자신의 일상 언어로 기록된 자서전·이력서는 스냅사진처럼 해방 직후 북한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푸른역사. 472쪽. 2만5천원.
[신간] 고백하는 사람들
▲ 한국전쟁: 전쟁을 불러온 것들, 전쟁이 불러온 것들 = 이상호 지음.
한미관계사 및 한국전쟁사를 연구해온 저자가 기존 연구가 미흡했거나 자료 부족 등으로 실상이 알려지지 않았던 주제를 중심으로 작성해 학술지에 게재했던 10편의 논문을 엮어 책으로 냈다.

저자는 한국전쟁을 둘러싼 내외부적 요인에는 거대담론인 세계 냉전적 분석이나 미시적인 국내 기원론 이외에 다른 분석의 도구가 필요하다는 문제 인식에서 출발해 한국전쟁을 둘러싼 한일관계, 미일관계, 한미관계와 인물사를 들여다봄으로써 한국전쟁의 새로운 모습을 그려내고자 한다.

한국전쟁 당시 전황이 위기에 처하자 이승만 정부가 일본으로 망명정부를 이전하려 했다는 일각의 주장이 정설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저자는 "주장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상황과 일치하지 않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한국정부의 해외 이전 계획은 단순히 망명정부가 아니라 전쟁의 각 국면에 따라서 유동적이지만 계획상 제3차 세계대전의 최후 국면에서 한반도로의 재진입이라는 전략적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소련과 전면전을 염두에 둔 비상조치 계획의 일환이었다고 설명한다.

또 미군이 북한군과 중공군에 대한 심리전의 일부로 동원한 삐라의 내용과 의미를 분석한다.

저자는 한국전쟁이 체제 우위, 이데올로기적 비교가 강하게 투영된 이념전쟁으로 진행됐으며 이것이 삐라로 표출됐다고 분석한다.

이밖에 그동안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초대 주한 미국대사 무초와 미군 사령관 워커의 인물 분석이나 인천상륙작전의 실질적 비밀 실행계획인 '크로마이트 작전'의 실상, 공산포로에 대한 '미국화 교육'의 전개 과정과 의미, 연합국번역통역국(ATIS) 자료 분석 등을 담았다.

섬앤섬. 328쪽. 1만9천원.
[신간] 고백하는 사람들
▲ 한국전쟁, 전장의 기억과 목소리 = 신기철 지음.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전후 시기에 분단의 최전선, 바다라는 전선에 둘러싸여 고통을 겪어온 옹진의 역사를 당사자들의 기억과 증언을 통해 새롭게 살펴본다.

한국전쟁 당시 옹진 지역의 의용군 강제징집, 상륙작전과 수복 과정의 피해, 이후 부역 혐의를 받았던 주민들의 죽음, 군사작전에 동원된 청년들의 죽음 등에 관해 당시를 기억하는 옹진군 주민 104명의 진술을 들었다.

이 가운데 90세 이상이 4명이다.

한 주민은 옹진 지역에 주둔한 국군이 한국전쟁 이전에 인민군을 상대로 국지전을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대한청년단 등 준군사 조직으로 동원되거나 노무부대 또는 보급대에 동원돼 목숨을 잃었다고 증언했다.

또 전쟁 전에 전국에 걸쳐 조직된 국민보도연맹이 덕적군도의 작은 섬인 이작도에까지 존재했고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이 다수 목숨을 잃었다는 증언도 나온다.

이전에는 '빨갱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주민이 이 말이 어떤 사람의 이름이나 직책인 줄 알고 한국전쟁 발발 후 마을에 주둔한 인민군을 '빨갱이님'이라고 불렀다는 웃지 못할 진술도 있다.

역사만들기. 308쪽. 1만8천원.
[신간] 고백하는 사람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