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화려한 성공 뒤에 숨겨진 실리콘밸리의 민낯
“우리 회사를 알게 된 당신은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는 당신이 누구인지 관심 없습니다. 우리는 직업 안정을 보장하지 않으며, 당신의 경력 개발에 도움이 될 어떤 프로그램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애플과 아마존, 테슬라 등으로 대표되는 ‘첨단 정보기술(IT)의 성지’ 실리콘밸리 기업들이다. 자유분방한 아이디어 산실로 여겨지는 실리콘밸리가 실제로는 업계 종사자를 끝없는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로 몰고 가는 ‘쥐 실험 상자’와 같은 곳이라고 날카롭게 비판하는 신간이 나왔다. IT전문기자 출신인 댄 라이언스가 쓴 《실험실의 쥐》다. 전작 《천재들의 대참사》에 이어 실리콘밸리의 문제점을 다시 파헤쳤다.

저자는 실리콘밸리 기업 직원들이 왜 ‘실험실의 쥐’가 됐는지 네 가지 키워드로 설명한다. 돈, 불안정, 변화, 비인간화다. 직원들은 업무량에 비해 여전히 적은 돈을 받는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정함에 시달린다. 끊임없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적응의 압박에 노출된다. 24시간 관찰되고 평가되며 인간성을 잃어간다.

저자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관심이 없다고 주장한다. 경영자가 “우리는 가족이 아니라 팀”이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조직원을 단기 고용자로 여기고, 직원 개개인의 경력 개발엔 관심이 없다고 지적한다.

한때 어디서나 통했던 애자일(민첩성) 법칙이 실제로 “90%는 헛소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효과 없음은 물론 오히려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임시직으로 내모는 방법으로 역이용됐음을 밝힌다. 저자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일하는 장소와 방법을 바꾸고, 새로운 업무 절차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며, 시끄럽고 개방된 사무실처럼 스트레스가 많은 새로운 환경으로 직원들을 몰아넣는다”고 말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해결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오래가는 회사’를 지향했던 20세기 경영자들의 사고방식은 결코 낡고 고루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는 것이다. 저자는 경영자와 조직원 모두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결국 모두가 ‘실험실의 쥐’로서 과로에 몰리는 입장은 똑같기 때문이다. “경영자는 기업의 이윤과 직원의 행복이 어떻게 공존할지 보여줘야 하고, 직원은 스스로를 어떻게 지켜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