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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0월 17일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브리지 교각의 파괴가 가장 심각했다. 밤낮없는 복구작업 끝에 6주 만에 재개통됐다. 하지만 손상된 고속도로 구조물과 출구로 구간은 지진 발생 1년6개월이 지나도 복구되지 못했다. 기술공학적인 어려움 때문에 복구 작업이 지체된 게 아니었다. 그 누구도 어디를 어떻게 복구할지, 심지어 복구 자체를 해야 할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의사결정이 계속 미뤄지면서 폐쇄된 해당 고속도로 구간으로 인해 우회에 따른 추가적 운송비와 연료비 등 해마다 약 2300만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정치적 자원을 충분히 동원하지 못해 발생한 일종의 기능 마비 상태를 보여주는 사례다.

‘인재 경영의 창시자’이자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경영 사상가로 꼽히는 제프리 페퍼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신간 《파워》에서 “아이디어와 결정된 일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리더의 무능함이 오늘날 조직 내에 만연해 있다”며 “공공과 민간부문 모두 조직 구조가 이전보다 평평해지고 위계질서가 약화되면서 업무처리를 위한 한층 강력한 영향력이 필요해졌다”고 진단한다.

[책마을] 권력을 겁내는 리더는 조직을 망하게 한다
저자는 이 문제의 근본 원인과 대처 방안을 ‘권력’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먼저 권력이란 무엇인지 그 실체를 분석하며 조직 내 권력의 속성과 영향력의 역할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이어 권력은 어디에서 오는지 그 원천을 탐구하며, 리더가 일을 성취하기 위해 어떻게 권력을 확립하고 행사해야 할지 실질적인 방법을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권력은 ‘의사결정을 실행하는 힘’이다. ‘리더가 반대 세력에 맞서 자기가 뜻한 바를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욕구, 이를 가능케 하는 지식과 역량’이자 ‘의도를 현실로 옮기기 위한 행동을 시작하고 지속하는 기본적인 에너지’다. 오늘날 리더십의 위기는 너무 많은 사람이 권력을 행사해서가 아니라 리더가 권력이라는 쟁점을 회피하는 데서 시작된다.

권력은 ‘좋은 자리’에서 나온다. 좋은 자리는 조직이 소유한 자원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거나, 소유하지 못하더라도 자원에 접근할 권한을 주는 것, 또 자원을 통제할 수 있는 공식적 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좋은 자리를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 리더는 자신이 통제하는 자원을 더욱 중요하게 만들어야 한다.

‘자원통제권’에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는 ‘사회적 관계 시스템’이다. ‘아는 것이 권력’이라는 말은 조직 생활에도 적용된다. ‘의사소통 네트워크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자신이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가’가 조직 내 권력을 창출하는 ‘지식’이 된다. 또 유능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쌓아 유지하고, 일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는 것도 권력의 중요한 원천이다.

이런 권력의 속성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일을 성취하기 위해 어떻게 권력을 효과적으로 행사할 수 있을까. 먼저 조직 내 쟁점을 관찰하고 문제를 새로운 프레임 속으로 집어넣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로 호감을 얻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거나 최소한 편하게 생각하도록 해야 대인 관계에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 ‘감정’도 좋은 권력 행사 방법이다. 사람은 논리에 의해 설득되지만 최종적인 결정은 감정에 의해 이뤄지고 감정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영원한 권력은 없다”며 “권력이 어떻게 서서히 쇠퇴하는가를 검토하는 것은 ‘어떻게 조직이 변화하는가’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한 차례 밀려났던 것도 조직 내에서 권력 기반을 확립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권력자가 되면 당장 그 직위가 주는 혜택을 누리고 싶은 유혹과 자만, 특권의식, 인내심 결여로 결국 권력을 상실한다”며 “부와 명성, 총명함과 관계없이 리더는 나이가 일정한 한계에 다다르면 결국 권력을 잃게 된다”고 주장한다. 권력 상실을 가장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저자는 그 권력을 제도화하는 것을 방법으로 제안한다. 재임 기간과 강제 교체를 규정해 승계를 정기적으로 하면 권력 상실의 오명을 없애고 정상적인 과정의 한 부분으로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권력의 행사’를 재차 강조한다. “권력으로 조직 내 오류를 발생시키고 다른 사람에게 일방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보다 더 큰 죄는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죄’”라고 말한다. 그는 “도전과 기회, 또는 큰 문제에 직면했을 때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죄야말로 조직을 망치는 지름길”이라며 “유능한 리더가 되고 싶다면 권력을 확대하고 이 힘을 바탕으로 참여하려는 의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