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는 에스메 콰르텟.  크레디아 제공
지난 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는 에스메 콰르텟. 크레디아 제공
모차르트부터 진은숙까지 다채로운 레퍼토리, 역동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구성과 연주…. 지난 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현악4중주단 에스메 콰르텟의 국내 데뷔무대는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했다. 약 130분 동안 다양하고 현란한 연주 기법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속삭이듯 연주하다 돌연 강렬한 화성을 뿜어내는 등 소리의 세기를 자유롭게 조절했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선율의 반복과 변주로 공연의 기승전결을 완성시켰다. 2018년 세계 최고 권위의 런던 위그모어홀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실내악계의 신성으로 떠오른 에스메 콰르텟의 진가를 확인시켜 준 무대였다.

첫 곡은 모차르트의 ‘현악4중주 14번’. 에스메 콰르텟은 애초 슈만의 ‘현악4중주 1번’을 준비했지만 코로나19로 침울한 분위기를 고려해 생기 넘치고 조화로운 이 곡으로 바꿨다. 리더 배원희(바이올린)의 조율 속에서 하유나(바이올린), 김지원(비올라), 허예은(첼로)이 영민하게 선율을 쌓아올렸다. 시종 경쾌한 연주로 공연장 분위기를 밝게 이끌었다.

다음 곡인 진은숙의 ‘파라메타스트링’이 시작되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마이크와 MR(녹음된 음악)을 사용하는 현대음악이어서 연주하기 까다로운 작품이다. 기괴한 전자음을 깔고 시작한 무대에서 멤버들은 활을 수직으로 꺾어 줄을 비비고, 손으로 줄을 쓸어내리는 등 현란한 연주를 펼쳤다.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처럼 신경질적인 선율은 객석에 숨가쁜 긴장감을 안겨줬다.

다니엘 갈리츠키가 편곡한 아일랜드 민요 ‘런던데리의 노래’가 분위기를 다시 반전시켰다. 서정적이고 우아한 화음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피날레는 일명 ‘죽음과 소녀’로 불리는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 14번’. 격렬하고 빈틈없는 합주가 객석에 희열을 안겼다. 마지막 연주의 잔향이 멈추자 객석에선 갈채가 쏟아졌다. 공연장을 찾은 류태형 음악평론가는 “에스메 콰르텟의 ‘죽음과 소녀’ 연주는 명불허전의 명연”이라고 평가했다.

유일한 오점은 공연장이었다. 롯데콘서트홀은 이날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고 냉방 장치를 가동하지 않았다. 1부가 끝나자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자리를 뜨는 관객도 눈에 띄었다. 연주자도 고역이었다. 멤버들은 연신 땀을 닦으며 연주를 이어갔다. 그럼에도 멤버들은 준비한 앙코르곡인 피아졸라의 ‘천사의 죽음’과 영화 주제가 ‘오버 더 레인보우’를 혼신을 다해 연주했다. 리더 배원희는 첫 앙코르가 끝난 뒤 울먹이면서 “정말 오랜만에 무대에 선다”며 “우리가 그리는 세상은 아무 걱정없이 좋은 음악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데뷔 무대에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에스메 콰르텟은 오는 13일 경남 통영과 17일 충남 천안에서 리사이틀 공연을 연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