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고향 미국 뉴올리언스

거리는 자유로운 흥으로 넘쳐났다.

어디서나 음악이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그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큼직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독한 칵테일이나 맥주를 손에 든 사람들이 가득했다.

지난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팬데믹 선언이 나오기 직전의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였다.

[Travel Abroad] 그리워라, 자유의 도시

◇ 프랑스 식민지에서 탄생한 '빅 이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뉴올리언스가 올해의 처음이자, 아마도 당분간은 마지막 해외 여행지가 될 줄은. 한없이 들뜬 분위기에 취해 있다 돌아와 자가격리와 재택근무가 두 달 넘게 이어지는 동안, 흥 넘치는 사람들이 모여 뿜어내는 기운을 그리워하게 될 줄은. 거리에서 어깨를 스치고 클럽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가벼운 웃음이나 눈인사를 나누는 일상에 감사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던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가는 동안, 뉴올리언스 유명 재즈 가문을 이끈 피아니스트 엘리스 마살리스(1934∼2020)가 코로나19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뉴올리언스는 별명도 많다.

'놀라'(NOLA)는 단순히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New Orleans Louisiana)의 줄임말이다.

'딕시랜드'(Dixieland)는 미국 남부를 뜻하는 '딕시'에서 나온 말이자, 뉴올리언스에서 발달한 재즈의 장르다.

미시시피강이 만드는 지형이 초승달을 닮아 '더 크레센트 시티'(The Crescent City)라고도 한다.

하지만 음악과 함께 삶을 축제처럼 즐기는, 여유롭고 느긋한 이곳 사람들에게 '빅 이지'(big easy)만큼 어울리는 별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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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스에서 가장 유서 깊은 지역인 '프렌치 쿼터'는 재즈를 비롯한 역사와 건축, 음식 등 이 지역의 모든 문화가 응축된 곳이다.

지명에서부터 알 수 있듯 뉴올리언스에서 프랑스 식민 지배의 영향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

1783년 미합중국이 대영제국에서 독립할 때 뉴올리언스는 미국 땅이 아니었다.

20년 뒤인 1803년 미국이 프랑스로부터 사들인 땅이다.

17세기 후반 프랑스령이 됐고 1718년 파리 남쪽 도시 오를레앙(Orleans)에서 이름을 따 '새로운 오를레앙', 뉴올리언스(New Orleans)라는 도시가 탄생했다.

도시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는 'NOLA 300'은 도시의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는 장식물이다.

한동안 스페인에 줬다 다시 빼앗아 오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 도시의 중심지는 '프렌치 쿼터'다.

그 안에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파머스 마켓인 '프렌치 마켓'이 있고, 그 옆에 프랑스식 커피(카페 오 레)와 도넛(베녜)으로 유명한 '카페 뒤 몽드'(Cafe du Monde)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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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이름과 스페인 건축이 어우러진 프렌치 쿼터
프렌치 쿼터의 거리 이름 역시 프랑스 왕실과 가톨릭 성인의 이름에서 따왔다.

관광객이 가장 먼저 발을 들이게 되는 버번(Bourbon) 스트리트는 부르봉 왕가에 바친 이름이다.

재즈 클럽과 바, 식당, 호텔이 늘어선 이 거리는 밤낮없이 시끌벅적하다.

거리 공연을 하는 예술가들을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흥이 올라 춤을 추고, 브라스 밴드의 퍼레이드를 따라 걸으며 춤을 추는 '세컨드 라인'(Second line)은 일상을 축제로 만드는 뉴올리언스의 전통이다.

최대 축제인 '마디 그라'(Mardi Gras)는 2월 25일 끝났지만, 그 여운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기름진 화요일'을 뜻하는 마디 그라는 프랑스에서 유래한 기독교 축제로, 동방박사 3인이 아기 예수를 만나러 온 날인 1월 6일 시작해 사순절의 시작을 알리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전날인 마디 그라까지 도시 곳곳에서 화려한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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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초록, 보라색이 섞인 티셔츠와 가면, 장식품이 상점이나 건물에서 다 치워지지 않았고, 밤이 무르익으면 버번 스트리트의 양쪽 화려한 주철 장식을 한 스페인 양식의 건물 2층 발코니에서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은 거리로 색색의 구슬 목걸이를 던졌다.

음주 관련법이 엄격한 미국에서 뉴올리언스는 거리에서 술을 마실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나다.

맥주는 물론 럼이 들어간 칵테일인 다이커리를 플라스틱 용기에 가득 채워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대낮부터 볼 수 있다.

◇ 뉴올리언스 재즈의 진수
뉴올리언스 여행의 시작과 끝은 재즈다.

식민지배를 했던 유럽의 후손과 노예로 정착한 아프리카 흑인 문화가 어우러져 탄생한 음악 장르인 재즈는 뉴올리언스의 정체성이다.

버번 스트리트의 한가운데서 살짝 벗어난 세인트피터 스트리트의 한 낡은 건물 앞에는 오후부터 긴 줄이 만들어진다.

뉴올리언스 재즈의 아이콘 '프리저베이션홀'(Preservation Hall)이다.

이름 그대로 뉴올리언스의 재즈를 지켜가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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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애호가도, 초보자도 뉴올리언스를 찾았다면 이곳을 건너뛸 수는 없다.

무료로 입장해 음료값을 내고 공연을 즐기는 다른 재즈 클럽들과 달리 이곳에서는 음료도 팔지 않고, 공연 중 사진도 찍을 수 없다.

하지만 낡고 좁은 공연장 안에서 마이크도 앰프도 없이 진행되는 길지 않은 공연을 보기 위해 매일 밤 수많은 사람이 줄을 선다.

홈페이지(preservationhall.com)에서 예약하면 40∼50달러에 좋은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당일 선착순 티켓은 20달러인데, 타이밍이 잘 맞으면 의자 첫줄 앞 바닥에 예닐곱 명이 방석을 깔고 앉아서 볼 수 있다.

공연 시간표나 확인하려고 들렀을 때 마침 다음 공연을 기다리는 줄이 막 시작된 참이었다.

동부 어느 도시에서 왔다는 중년 부부 두 쌍이 앞에 있었다.

그들 중 넉살이 좋은 아저씨가 "우리가 함께 50달러짜리 의자보다 앞에 앉을 수 있다"며 기뻐했다.

관람객이 유난히 많았는지 나중에 입장한 사람들이 우리 앞에 다시 한 줄을 만들면서 무대와 관객석 사이, 관객과 관객 사이는 더 좁아졌다.

한 시간이 조금 안 되는 공연 동안 불편하게 다리를 모으고 있었지만, 시간은 음악과 함께 순식간에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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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번 스트리트의 한 호텔 1층에 있는 '재즈 플레이 하우스'는 좀 더 고급스럽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무대 바로 앞자리는 20달러를 내고 예약해야 하지만, 나머지 일반석은 선착순으로 입장해 음료를 주문하면 된다.

무대와 거리는 멀지만, 벽에 붙은 높은 의자에 앉으니 공연장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힘 넘치는 라이브 연주와 노래를 안주 삼아 와인 한 병을 비웠다.

재즈 플레이 하우스 맞은편 '뮤지컬 레전드 공원'에는 야외에 공연장과 카페가 함께 있어 오며 가며 쉬기 좋다.

◇ 동네의 터줏대감 할머니와 즐긴 재즈 공연
재즈를 좀 더 즐기려면 시끌벅적한 버번 스트리트를 벗어나 프렌치 쿼터 외곽에서 바로 이어지는 프렌치먼(Frenchmen) 스트리트로 가는 게 좋다.

자그마한 재즈 클럽들이 옹기종기 이어져 있어 호핑(hopping)을 하기 좋다.

대부분 그냥 입장해 음료를 주문하고 자유롭게 앉거나 서서 라이브 연주를 즐기면 된다.

'쓰리 뮤지스'(Three Muses)처럼 간단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곳도 있다.

'더 스파티드 캣 뮤직 클럽'(The Spotted Cat Music Club)은 유일하게 두 번 찾은 곳이다.

첫날 트롬본과 클라리넷 연주에 기분 좋게 반해 있는데, 술기운에 흥이 과하게 넘친 한 남성이 홀 가운데를 누비는 바람에 눈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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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에도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보행 의자에 의지한 채 천천히 클럽으로 들어온 한 할머니가 무대로 다가가 연주자들과 다정하게 포옹했다.

할머니가 피아노 앞에 자리를 잡자 바에 있던 직원은 와인 한 잔을 들고 와 볼 키스와 함께 할머니에게 건넸다.

동네 주민으로 클럽의 단골인 듯한 할머니는 한동안 손가락과 머리를 까딱까딱하며 연주를 즐기다 홀연히 사라졌다.

다른 클럽에서도 무대 앞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춤에 빠져드는 건 노년의 커플이었다.

◇ 루이 암스트롱의 어린 시절
프렌치 쿼터의 끝, 프렌치먼 스트리트와 만나는 곳에 있는 빨간 벽돌 건물은 한때 조폐국이었다.

지금은 뉴올리언스 재즈 박물관인 이곳에서는 루이 암스트롱이 10대 때 흑인 소년보호소의 브라스 밴드에서 처음 사용했던 코넷(트럼펫처럼 생긴 작은 금관악기)을 볼 수 있다.

암스트롱은 뉴올리언스가 낳은 최고의 재즈 스타지만, 말년을 뉴욕에서 보냈고 대부분의 컬렉션이 뉴욕 퀸스의 루이 암스트롱 박물관에 보관돼 있기에 이 코넷이 뉴올리언스 재즈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그의 유품이다.

빈민가에서 태어난 암스트롱은 보호소에서 밴드 마스터 피터 데이비스에게 처음 음악을 배웠고, 코넷으로 빈민가를 탈출했다.

소년원 밴드 시절 찍힌 단체 사진을 오마주한 그림 한 장에 이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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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의 미술관, 공원의 미술관
시티 파크는 뉴올리언스의 또 다른 자랑이다.

시티 파크 안에 뉴올리언스 미술관과 조각공원이 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이 공원에서 수백년을 살아온 오크 나무를 보기 위해서라도 빨간 트램을 타보자.
프렌치 쿼터의 중심에서 미시시피강 쪽으로 자리 잡은 잭슨 스퀘어의 한가운데는 뉴올리언스 전투(1815년)에서 영국을 대파한 앤드루 잭슨(미국 7대 대통령)의 기마상이 있지만, 여행자들의 관심을 받지는 못한다.

공원의 주인공은 주변을 둘러싼 철제 울타리에 걸린 그림과 그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다.

그들이 걸어 놓은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도 프렌치 쿼터의 풍경과 재즈 연주자들, 뉴올리언스의 자연이 대부분이었다.

상술과 애향심의 사이에서 자긍심이 보였다.

머리와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의 화폭 안에는 어제오늘 종일 걸어 다닌 프렌치 쿼터의 익숙한 풍경이 따뜻하고 섬세한 수채화로 담겨 있었다.

귀를 찢는 시끄러운 음악과 얼큰하게 취한 사람들이 혼을 빼놓는 버번 스트리트에서 한 블록만 벗어나도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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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 라인인 로열 스트리트는 개성 넘치는 갤러리와 골동품 상점을 호젓하게 구경하기 좋다.

여전히 밤거리를 밝히는 가스등 전문 매장도 있다.

이곳 역시 거리의 음악가들이 배경 음악을 깔아준다.

프렌치먼 스트리트에서 밤에 문을 여는 아트 마켓 역시 흥미진진하다.

카페 뒤 몽드에서 대표 메뉴인 카페 오레 대신 치커리가 들어간 진한 커피와 슈가 파우더가 잔뜩 올라간 베녜(beignet)를 맛보고 프렌치 마켓 방향으로 걷다가 '뉴올리언스 재즈 내셔널 히스토리컬 파크' 옆에 붙어있는 보물창고를 발견했다.

지역 예술가들이 협동조합을 꾸려 직접 운영하는 아트숍이다.

그림과 사진, 수공예품까지 유니크한 작품들이 'NOLA'를 기억할 기념품으로 더할 나위 없었다.

◇ 빨간 트램 타고 시티 파크로
도시를 가르는 빨간색 트램을 타고 뉴올리언스 미술관(NOMA)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미술관이었지만, 도심에서 앙증맞은 트램에 올라탄 순간부터 기대하지 않았던 새로운 즐거움이 시작됐다.

종점인 미술관 정거장에 내리니 프렌치 쿼터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진입로 양쪽으로 아름드리 오크 나무가 자라는 드넓은 잔디밭에서 사람들은 개와 함께 산책하거나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연인들은 데이트를 하고, 작은 아이가 뛰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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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들어가기 전, 미술관 뒤쪽으로 펼쳐진 조각공원으로 먼저 향했다.

작은 호수와 호수를 건너는 다리, 숲과 잔디밭의 산책로를 걸으며 작가 이름은 몰라도 작품은 익숙한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나 로버트 인디애나의 '러브' 같은 작품을 볼 수 있다.

프렌치 쿼터의 갤러리에서도 봤던 세 가지 색의 강아지 작품은 뉴올리언스에서 멀지 않은 뉴 이베리아 출신인 조지 로드리게의 '위 스탠드 투게더'(WE STAND TOGETHER)였고, 한국 작가 서도호의 '카르마'도 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거대한 오크나무에서 기생하는 스패니시 모스가 늘어져 있는 모습이 독특한 풍경과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진입로와 조각공원, 3층 규모의 미술관은 520만㎡가 넘는 드넓은 시티 파크의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공원 중 하나인 시티파크에는 750∼900년 수령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크 나무를 비롯해 3만여 그루의 나무가 있다.

듬직한 오크 나무에 기대앉아 책을 읽거나 짧은 낮잠을 즐기기에는 반나절의 시간이 너무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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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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