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이 뭐 대단하겠나…알라·로터스상 복원 희망"

"염상섭 '삼대'의 뒤를 이었습니다.

그는 식민지 부르주아를 다뤘고 나는 산업노동자를 다뤘다는 점이 있겠네요.

"
소설가 황석영(77)이 2일 신작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 출간을 기념하는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작품의 문학사적 의의다.

황석영은 이날 도서출판 창비가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주최한 간담회에서 "염상섭의 '삼대'가 식민지 부르주아 삼대를 통해서 근대를 조명해낸 소설이라면, 나는 3.1 운동 이후부터 전쟁까지, 그 뒤를 이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소재를 철도 산업 노동자로 잡은 이유에 대해선 "경공업인 양말 공장, 두부 공장 이런 것과는 좀 다르게, 철도, 강철 이런 것은 근대 산업사회를 상징하는 중공업이다.

이걸 노동자들의 핵이라고 한다"면서 "근대 산업사회의 중심이 되는 노동자가 철도 노동자"라고 설명했다.

'철도원 삼대' 황석영 "염상섭 '삼대' 뒤를 이었다"
'철도원 삼대'는 일제 강점기부터 최근까지 100년 근현대사를 철도원 가족 삼대에서 공장 노동자인 증손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서사를 통해 노동 이야기로 풀어낸 대작이다.

굴뚝 위에서 농성하는 증손 이진오의 입을 통해 앞선 삼대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굴뚝이 재미있잖아요.

지상도 아니고 하늘도 아니고 중간지점이에요.

일상이 멈춰있으니 상상력으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이를 통해 3대 이야기를 4대째 후손이 들락날락 회상하는 식으로 소설을 구성했습니다.

"
황석영은 '노동자의 삶'을 다룬 이유에 대해 "산업노동자를 한국 문학에서 정면으로 다룬 장편소설이 거의 없다"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빠뜨렸다.

그래서 그걸 조금 채워 넣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보수와 진보를 다 아우르는 사람"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또 자신의 후반기 문학이 무속, 설화, 민담 등을 차용하면서 전반기 리얼리즘 문학을 확장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하면서 "철도원 삼대는 민담 형식을 빌려서 쓴 작품"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 소설을 창작하게 된 동기와 관련해서는 1989년 방북 당시 만났던 '고향 어르신'과의 일화를 들었다.

당시 황석영은 백화점에서 만난 '아버지뻘' 부지배인의 고향이 자신과 같은 서울 영등포라는 사실을 알고 다시 만나 술잔을 나누며 그의 과거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했다고 한다.

황석영은 "그 사람 과거를 듣게 됐고, 그래서 이걸 소설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황석영은 이 소설을 쓰는 동안 19차례나 집필실을 옮겨 다니며 하루 8~10시간 정도 작품을 썼다고 전했다.

그는 "기운이 달려 기억력도 떨어지고 등장인물들도 이름이 헷갈려 쓰는 동안 막 바뀌고 그래서 고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작가는 은퇴 기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죽을 때까지 써야 한다.

그게 작가의 책무"라며 "기운이 남아있을 때까지 써야 하는데 마구 쓰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새로운 정신을 갖고 새로운 작품을 써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황석영은 노벨문학상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 견해를 밝히면서 제삼 세계 작가 기구였던 '알라'(AALA :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작가회의)와 이곳에서 운영했던 '로터스 문학상'을 2~3년 안에 부활하는 방안을 추진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우리가 서구나 유럽 문학을 따라잡아야 하는 것 아니냐, 우리도 이만큼 성장했는데 올림픽서 메달 따내듯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생각했죠. 그런데 외국에서는 노벨상 받아봐야 (언론에서) 단신으로 한 석 줄 나와요.

독자들이 순진했을 때엔 각 출판사에서 난리가 났어요.

몇 조각으로 찢어 경쟁해서 책을 내면 100만부 이상 팔리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소동을 안 벌이는 것 같아요.

기자들만 소동 벌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상이 그리고 많이 생겼습니다.

"
그는 스웨덴 한림원이 있는 곳을 "유럽에서 시골"로 비유하면서 "파리도 못 가봤을 듯한 사람들이 모여서, 한림원 도서관에 책을 20~30권 보내오면 노인네들이 앉아서 7~8권으로 추린 다음에 (선정)하는 건데 그게 뭐 대단하겠느냐. 그 사람들이 뭘 알겠느냐. 잘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석영은 다음 작품으로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보는 철학 동화'를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마침 있는 곳이 원불교가 발생한 장소이다.

그래서 소태산 박중빈(원불교 창시자) 어린 성자가 사물에 대해 깨달아가기 시작하는 과정을 쓸까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그는 코로나19 사태가 인류에게 여러 질문과 교훈을 던지고 있다고 밝히고 "그런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서 작품 활동을 조금 더 하려고 한다"면서 "젊었을 때 장길산을 통해 미륵 사상을 깊이 공부했는데, 그걸 다시 한번 시작할까 생각한다"고 했다.

황석영은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서는 "북미 대화가 시작했고 화두는 다 나왔다"면서 "지구상에서 누구를 괴롭히거나 침략도 안 하고 당하기만 했는데 70년간 전쟁을 종식하지 않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한편 황석영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시작하면서 지난주 간담회가 자신의 예고 없는 불참으로 취소된 데 대해 사과했다.

그는 당시 5·18 관련 행사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시계 알람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고 솔직히 설명하고 "큰 대형사고를 쳤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철도원 삼대' 황석영 "염상섭 '삼대' 뒤를 이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