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 리안갤러리 서울 개인전 '푸른 구성'
가구의 굴레를 벗고…동판과 칠보의 자유로운 조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무심코 의자에 앉았다가 작품이라는 말에 머쓱해질 때가 있다.

종종 '앉지 마시오'라는 팻말도 보인다.

대량생산 제품이 아닌 수작업 작품 가구 앞에서 이런 혼란이 생기지만,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다.

작품도 의자가 될 수 있고, 의자도 작품이 될 수 있다.

이광호(39)는 작품 같은 가구, 가구 같은 작품을 만들어온 작가다.

뜨개질하는 식의 짜기 기법으로 만든 독특한 의자와 조명으로 주목받았다.

홍익대 금속조형디자인과 출신인 그는 국내외 디자인비엔날레와 전시회에 수차례 참여했고, 2017년 브라질 디자인·아트 마켓(MADE) 올해의 작가상 등을 받았다.

실용성과 예술성을 갖춘 가구로 협업도 여러 번 했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등에 그가 디자인한 의자가 놓였다.

가구와 예술의 경계에 있던 그의 작품에 큰 변화가 생겼다.

종로구 창성동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개막한 개인전 '푸른 구성(Composition in Blue)에서 작가는 실용성보다는 조형미로 무게중심을 과감히 옮긴 작품을 선보인다.

그동안 주로 디자이너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이광호가 조각가, 설치미술가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는 셈이다.

정작 작가는 지금까지도 자신을 어느 영역에 가두거나 규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디자인이냐 예술이냐는 큰 의미가 없었고, 굳이 나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재료와의 교감에 집중했을 뿐이며, 내 작업이 가구일 수도 조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돌이든 나무든 앉는 행위를 일으키는 건 높이"라며 "조형물로 만들었어도 앉을 수 있으면 의자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신작은 온전히 조형미에만 집중했다는 점에서 기존 작업과 차이가 있다.

리안갤러리가 순수미술로의 확장을 제안했고, 영역을 넓혀보고 싶었던 작가와 뜻이 통했다.

작가는 "이전 작업은 결과적으로 앉을 수 있고 불이 켜지는 등 최소한의 쓰임새가 있었다"라며 "이번에는 쓰임새를 빼고 제약 없이 자유롭게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7월 31일까지인 이번 전시는 적동과 칠보를 활용한 연작으로 채워졌다.

규격대로 양산된 동판과 동파이프를 일정한 단위로 자르거나 이어붙여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했다.

표면에는 푸른색 칠보를 발라 700~800도 가마에서 구웠다.

높은 온도에서 동 표면이 산화해 새로운 색깔과 질감을 내고, 푸른 칠보를 바른 부분 역시 오묘한 빛깔로 변한다.

작가가 여러 차례 실험을 거쳐 찾아낸 기법이지만, 불 속에서 최종 결과물은 우연으로 완성된다.

전시장 한쪽 면에는 같은 크기 정육면체 32개가 규칙적으로 배열됐다.

벽돌 모양 직육면체, 바닥부터 벽까지 'L'자 형태로 꺾인 동파이프, 건축물 모퉁이를 잘라낸 듯한 작품도 있다.

전시장 한가운데 짜기 기법으로 만든 긴 벤치 형태 한 점이 유일하게 가구로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을 듯하다.

그는 동판으로 만든 벽돌 모양 작품을 가리키며 명료하게 정리했다.

"그저 이광호가 만든 무엇이 되길 바랍니다.

벽돌 디자이너 이광호가 아니고 이광호가 만든 벽돌로 봐줬으면 합니다.

"
가구의 굴레를 벗고…동판과 칠보의 자유로운 조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