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情)'이라는 단어와 비슷한 말이 터키에도 있어요.

터키에서는 존경과 사랑, 소유가 적절히 섞인 감정이라고 배워요.

특히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정도 많이 쌓인다고 생각해요.

이제 한국이 내 나라가 됐으니까 한국을 향한 애정도 커졌어요.

"
2010년 터키 최대 민영뉴스통신사인 지한(Cihan)통신의 기자로 터키 최초 한국특파원이라는 타이틀을 가졌던 알파고 시나씨(33) 씨는 26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4년 전 모국에서 일어난 쿠데타는 내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터키 최초 韓특파원서 희극인으로 '인생 2막' 알파고 시나씨

터키에서 명문고를 졸업한 뒤 2004년 한국으로 넘어온 그는 충남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외교학 석사학위를 땄다.

연평도 포격 사건 등 한국에서 발생했던 굵직한 사건을 취재하며 기자로서 이름도 알렸고 터키에서도 한국 전문가로 통했다.

그러다 2016년 7월께 터키에서 발생한 쿠데타로 그가 속한 통신사를 포함해 터키 언론사 130여 곳이 폐쇄됐다.

졸지에 백수로 전락한 것이다.

알파고 씨는 "처음 드는 생각은 '이제 뭐 먹고 살지'였다"고 말했다.

2014년 대학원 재학 시절 한국 여성과결혼하며 가장으로서 떠맡은 책임감도 무거웠다.

궁리 끝에 찾은 직업은 스탠드업 희극인이었다.

스탠드업 희극은 희극 배우가 관객을 마주하는 실시간 희극 형식이다.

그 주제는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이 풀어내는 우리 사회 모습이었다.

서울 대학로 허름한 극장을 빌렸고 코미디언 지망생과 팀을 꾸려 공연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산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독특한 점이 많았거든요.

대학교 엠티 가서 만취한 뒤 다음날 다 같이 쓰러져 자는 모습이나, 서로 술값 내겠다고 하는 모습, 다문화 교육의 하나로 단체로 한복을 입히고 경복궁에서 인증샷을 찍는 모습이 그랬죠."
시작은 어려웠다.

그는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는 '난 팩트만을 다루는 기자였는데 이렇게 과장해서 말하고 풍자적으로 표현해도 되는 걸까'하는 자괴감이 들었다"며 "생계 걱정만 없었다면 진작에 때려치웠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벌을 서듯 올랐던 공연은 매달 서너차례씩 꾸준히 이어졌고 최근 130회를 채웠다.

나름 입소문을 탔고 방송 출연도 이어졌다.

서울 시내를 다니면 알아보는 사람도 조금씩 생겼다.

생계 걱정을 덜게 됐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쿠데타 직후 터키는 물론이고 해외에 머문 언론인들이 구금되거나 구속됐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렸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가 2016년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터키 쿠데타 이후 기자와 언론사 직원 148명이 수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한통신 뉴스사이트는 여전히 닫혀있으며,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2016년 7월을 끝으로 뉴스가 올라오지 않는다.

터키 최초 韓특파원서 희극인으로 '인생 2막' 알파고 시나씨

알파고 씨는 "터키에 머문 회사 선배들은 반정부 인사로 몰리거나 감옥에 갔고 해외 특파원은 본국으로 돌아오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언제 불려갈지 몰라서 매일 같이 불안에 떨었다"고 말했다.

2018년 9월 한국으로 귀화를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쿠데타 조짐이 있던) 2015년 터키를 떠나면서 어렴풋이 다시는 못돌아 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는데 그게 맞아 떨어져 서글펐다"며 "동시에 '한국은 내 나라일까'라는 물음을 놓고 오랜 기간 고민한 결과 '그렇다'는 답을 찾았기에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그는 이내 "조만간 터키에도 봄이 올 것이며 고국 땅을 밟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인생의 절반을 터키에서, 나머지 절반을 한국에서 보낸 그는 최근 아제르바이잔이나 발칸 반도 등 해외 민요를 국내에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유색 인종 편견을 완화하는데 일조할 거라는 믿음에서다.

"제가 처음 인천국제공항에 내린 17년 전보다 지금 한국 사회는 개방적으로 변했고, 해외 문화를 수용하는 폭도 커진 것 같아요.

다만 여전히 피부색이 다른 이들을 대할 때 반감이 있어요.

K팝을 접한 세계인들이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고 애정을 보냈듯이, 우리도 해외 여러 문화를 접한다면 편견도 조금씩 옅어지지 않을까요.

"
그는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본능이지만, 그런 본능을 이겨내야 진짜 '홍익인간'(널리 인간을 이롭게 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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