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의 경계 허물자 색면추상이 나왔다
그는 원래 풍경을 그렸다. 주황색이나 주홍색 지붕의 그림 같은 집들이 나무들 사이에 파스텔 톤으로 펼쳐진 풍경은 유럽의 어디쯤인가 싶다. 서로 어깨를 맞댄 집들이 빼곡히 들어찬 모습은 동화 속 세상 같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그의 그림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집이 있는 풍경을 그리는 건 그대로인데 표현이 구상에서 추상으로 옮겨갔다. 담장과 벽 같은 집과 집의 경계가 흐려지고 선명한 윤곽선이 없어졌다. 대신 집들은 사각형의 색면으로 단순화되고 여백이 없이 수직, 수평으로 도열한 집들만 있는 화면 전체가 색면추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29일부터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포럼스페이스에서 초대전 ‘풍경으로 해체한 풍경’을 여는 화가 장민숙 씨(53) 이야기다. 이번 전시에는 근작 20여 점을 건다.

장씨는 “내 그림 속의 수많은 집은 그만큼이나 많았던 내 안의 나였다”고 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는 언제나 달랐고, 사람들과의 만남이 힘들었다. 그럴 때면 자신이 좋아하는 산책을 나섰다. 각각의 견고한 벽을 가진 집들이 있는 골목을 오래도록 방황했다. 장씨가 작품 제목을 모두 ‘산책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flaneur’(사진)라고 한 이유다.

그는 “마음이 힘들 때 동네 골목길을 걸으면서 비슷하지만 각자 다르게, 다르지만 또 비슷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위로받았다”며 “하나하나의 색면은 집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 속에 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림 속의 집들은 그 안에서 살아가면서 겪는 행복과 불행, 사랑과 고통으로 견딘 삶의 냄새와 기억, 상처들까지 기록한 자화상이라는 얘기다.

미술평론가인 김웅기 옵시스 아트 대표는 “풍경에서 추상으로 이어지는 연결이나 이행이 이토록 순차적이면서 자연스러운 작가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고교 때부터 그림을 그렸지만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장씨는 독학파 화가다. 대학 졸업 후 다시 붓을 잡았지만 결혼과 육아로 쉬어야 했다. 2000년쯤 다시 캔버스 앞에 선 그는 선배 작가들의 작품이나 책을 보며 스스로를 연마했고, 사람들의 삶이 함축된 집이 있는 풍경에 끌려 꾸준히 그려 왔다. 지금까지 18차례 개인전 및 초대전을 열었고, 국내외 아트페어와 단체전에도 많이 참여했다. 전시는 다음달 11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