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5가 한 약국의 모습. 백발의 노인이 약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이미경 기자
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5가 한 약국의 모습. 백발의 노인이 약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이미경 기자
# "정형외과에서 처방전을 받은 약은 아들 카드로 결제하고, 잇몸에 좋다는 영양제는 재난지원금으로 결제했어요. 평소에 동네주민이 추천하던 영양제는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아들에게 사달라는 소리를 못했는데, 이번에 긴급재난지원금으로 하나 샀습니다." (김봉걸씨, 73세)

# "영양제는 꾸준히 복용해야 효과가 좋다고 들었습니다. 계속 먹다 보니 다달이 돈이 드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지난 3개월간 중단했는데 긴급재난지원금이 들어와서 먹던 영양제를 다시 구매했어요. 동네 마트나 편의점에서 식료품을 사는 것보단 나에게 필요한 영양제를 사는 것이 더 좋네요." (최향미씨, 67세)

20일 오후 서울 종로5가의 약국은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영양제를 사려는 노인들로 붐볐다.

몇몇 약국은 '영양제 판매 특수'를 노리듯 문 앞에 '긴급재난지원금 사용 가능'이라는 안내문을 붙여놓기도 했다. 해당 안내문을 붙여놓은 약국의 약사는 "약국을 방문해 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는지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아 붙여놨다"면서 "지원금을 사용하며 괜히 눈치를 보시는 분들도 있으신데 편하게 사용하시라고 안내문구를 붙여놨다"고 설명했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5가의 한 약국 입구에 '긴급재난지원금 사용가능'이라는 안내문구가 붙어있다./사진=이미경 기자
지난 20일 서울 종로5가의 한 약국 입구에 '긴급재난지원금 사용가능'이라는 안내문구가 붙어있다./사진=이미경 기자
종로5가의 한 대형약국에서 일하는 50대 약사는 "정기적으로 영양제를 사가던 어르신은 매번 '뭐가 이렇게 비싸'라며 한숨을 쉬셨는데, 이번에는 아무 말도 없이 사가시더라"고 말했다.

종로5가에 위치한 대형약국 뿐만 아니라 동네 약국에서도 영양제를 사려는 노인들의 방문이 잦았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소규모의 약국을 운영하는 임모씨(53)는 "약국 규모가 작다 보니 영양제가 하루에 한 통도 팔리지 않는 날도 잦다"면서 "그런데 최근에는 하루 3통 이상 영양제가 팔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난지원금이 지급된 이후 영양제 판매량이 30% 정도는 더 늘어난 것 같다"면서 "영양제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대형 약국은 판매량이 훨씬 많이 늘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약국을 방문해 두 종류의 영양제를 구입한 박모씨(83)는 "영양제를 한 번도 안 먹어봤는데 이번에 처음 먹어본다"면서 "긴급재난지원금으로 뭘 살지 고민하다가 영양제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건강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만큼 이번 지원금도 건강을 위해 쓰는 것이 지급 목적에 가장 부합하다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약사들은 긴급재난지원금 사용처에 제한이 있어 약국으로 노인들이 몰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종로5가의 한 대형약국에서 일하는 30대 약사는 "재난지원금 사용처에 제한이 있고 그 와중에 기간 제한까지 있다 보니 마땅한 소비처를 찾지 못한 노인들이 약국을 찾는 것 같다"면서 "특히 노인분들은 건강에도 관심이 많아 자연스레 영양제 판매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준 긴급재난지원금은 대형마트에 입점한 약국을 포함한 전국의 모든 약국에서 쓸 수 있다.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편의점과 동네마트 등은 이용 가능하지만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단, 매달 일정 금액의 임차료를 내고 대형마트의 공간만 빌려 장사를 하는 소상공인들의 가게에서는 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다.

이미경 한경닷컴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