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숲의 향연…"인간 없는 낙원 그렸죠"
금호미술관서 개인전 여는 김보희 화백
원형의 자연을 구현한 '투워즈'
트럼프 방한 때 청와대 걸려 화제
원형의 자연을 구현한 '투워즈'
트럼프 방한 때 청와대 걸려 화제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초대전 ‘투워즈(Towards)’를 열고 있는 김보희 화백(68)의 풍경화 ‘더 데이즈(The Days)’다. 3층 전시장의 벽면 두 개를 가득 채운 이 그림은 가로 14.58m, 세로 3.90m의 초(超)대작이다. 100호 크기의 캔버스 27개를 가로로 9개, 세로로 3개 이어 붙인 작품으로, 완성하는 데 3년이 걸렸다.
그림은 왼쪽의 새벽 바다로 시작해서 한낮을 거쳐 오른쪽의 둥근 달이 뜬 밤풍경으로 끝난다. 나무와 풀과 꽃, 날짐승과 들짐승, 파충류까지 숲의 일원으로 참여한다. 서로 다투지 않고 각자 자신의 몫을 다하며 삶을 누리는 숲의 세계는 태초의 낙원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빠진 게 하나 있다. 사람이다.

그의 풍경에 열대, 아열대 식물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제주도 풍광에서 영감을 얻은 바가 크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제주의 풍경을 다채로운 색감과 형태로 담아낸 작품 등 55점을 선보이고 있다. 색면추상을 연상케 하는 바다풍경 시리즈, 동식물이 공존하는 원형의 자연을 구현한 ‘투워즈’ 시리즈, 자연에서 발견하는 시간의 순환과 생의 주기를 식물의 씨앗과 숫자로 비유한 작품 등 다양하다. 지난해와 올해 그린 신작 33점을 포함한 미공개작이 36점이다.
2017년 이화여대에서 은퇴한 김 화백은 능소능대(能小能大)하다.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그 틀에 갇히지 않았다. 동양과 서양, 구상과 추상의 이분법을 넘어 동양화의 자연관을 서양화 재료로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수묵과 채색, 원경과 근경, 풍경·인물·정물 등 다양한 소재를 다뤄왔다. 그의 풍경엔 실재와 상상이 혼재한다.
전시장 1층에 건 ‘더 테라스(The Terrace)’는 서로 다른 시점에서 본 테라스 앞의 풍경을 담고 있다. 100호 크기 캔버스 8개를 합친 대작이다. 원경의 자연은 하나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것 같은데 발밑에 있는 듯한 테라스의 시점은 여러 개다. 마치 곡면렌즈로 찍은 사진 같다. 이 작품 옆에 걸린 개의 초상화 ‘레오(Leo)’는 밀도 높은 묘사로 대상의 특징을 드러낸다.

“풍경화에만 나를 가두고 싶지는 않았어요. 수묵이든 정물이든 그때그때 나를 표현하는 겁니다. 숫자가 들어간 추상 작품은 시간의 흐름에 대한 저 나름의 느낌과 인식을 담고 있는 것이고요. (전에 많이 그렸던) 인물도 다시 해보고 싶습니다. 인물은 그 자체로 큰 피조물이니까요.” 전시는 7월 12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