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대만의 TSMC가 미국 애리조나주에 최첨단 반도체 생산공장을 건립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회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미 월스트리저널(WSJ)은 TSMC가 이르면 15일 미국에 새 공장을 건설하는 계획을 발표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최근 미 정부가 TSMC, 인텔과 '반도체 안보'를 이유로 미 현지에 공장을 짓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지 나흘 만이다.

이미 TSMC는 지난 12일 이사회에서 관련 사안에 대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최신 5나노 공정으로 지어질 이 공장은 빠르면 2023년부터 가동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 TSMC의 약자 뜻은 '대만반도체제조회사'


TSMC는 대만의 세계 최대 파운드리 회사로, 사명은 '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의 약자다. 한국어로 풀면 뜻 그대로 '대만반도체제조회사'다.

이 업체의 가장 큰 특징은 반도체를 자체 설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기업으로부터 설계도를 받아 위탁 생산만 한다. 때문에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TSMC가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체 개발을 하는 회사들이 운영하는 팹(Fab, 반도체 공장)에 외주를 맡기면 기술유출에 대한 염려가 있어서다. 이는 '설계'와 '생산'을 겸하는 종합 반도체 회사인 삼성이나 일부 중국 반도체 회사들이 TSMC에 비해 불리한 지점이다. 다수의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생산'만 하는 TSMC를 선호하는 이유다.

주요 고객사로는 애플, 퀄컴, 화웨이, 삼성전자, NVIDIA 등이 있다. 인텔도 주문량이 밀려 자사의 설비로 생산량을 감당할 수 없을 때 TSMC에 생산을 위탁한다.

TSMC의 힘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TrendForce)에 따르면 지난 1분기 파운드리 시장은 TSMC가 54.1%, 삼성전자가 15.9%를 점유했다. TSMC는 전년 동기 대비 6%포인트 증가했지만 삼성전자는 3.2%포인트 줄었다. TSMC는 올 1분기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여파에도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42%나 증가했다.

◆ 창업자가 강조한 연구개발의 중요성
모리스 창 전 TSMC 회장 [사진=EPA 연합뉴스]
모리스 창 전 TSMC 회장 [사진=EPA 연합뉴스]
TSMC를 세계 최고 파운드리 회사로 만든 것은 대만 반도체의 아버지로 불리는 모리스 창 창업주(前 회장)다. 중국 저장성 닝보시에서 태어난 창 전 회장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폭격을 피해 광저우와 홍콩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미국으로 이주했다. 1949년엔 하버드대학에 입학했지만 공학도의 꿈을 품고 MIT로 옮겨 기계공학을 공부했다.

그는 미국 반도체 기업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20년간 근무하며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TI는 그가 스탠퍼드대학원에서 전기공학박사학위를 받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창 전 회장은 TI에서는 물론 이후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이적한 제너럴인스트루먼트(GI)에서도 연구개발(R&D)을 본격적으로 육성하고자 했다. 하지만 주주들의 반대로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때 대만 정부가 손을 내밀었다. 창 전 회장은 1987년 대만에서 TSMC를 창업했다.

당시 대만 정부는 경제 독립에 대한 꿈을 이뤄줄 국가 기간산업으로 반도체를 낙점했고, 창 전 회장은 그에 맞는 적임자였다. 그는 오랜 기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순수 파운드리' 사업이라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놨다.

창 전 회장의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위탁생산 전문이라는 차별성을 구축하자 브로드컴, 마벨, 엔비디아 등 굵직한 고객사가 안심하고 TSMC에 주문 제작을 의뢰했다.

지난해 기준 TSMC는 499개 고객사로부터 1만761개의 서로 다른 제품을 생산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1조699억8545만대만달러(43조8052억원)다.

창 전 회장은 늘 연구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TSMC는 2009년부터 매년 약 100억달러를 들여 첨단 시설을 지었고 연구 개발 비중도 매출의 8%로 높였다. 지난해에도 이 비중을 유지하며 914억1900만 대만달러(3조7408억원)를 연구개발에 썼다.

연구개발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로 대만의 꿈을 실현시켜준 창 전 회장은 2018년 그의 나이 87세에 모든 직책에서 내려왔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TSMC를 '잡스가 떠난 애플'에 비유했다.

창 전 회장이 TSMC를 떠났지만 회사는 그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기로 했다. TSMC는 올해 장기 성장을 염두에 두고 150억~160억달러(18조4800억~19조7100억원)의 시설투자를 할 예정이다. TSMC는 이미 5나노 공정 양산에 들어갔고 내년에는 3나노 공정 시험생산으로 기술을 확장할 계획이다.

◆ TSMC 바라보는 트럼프와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TSMC의 경쟁력은 반도체 자급을 천명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도 눈에 띄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공장의 미국 내 설립을 계획하던 중 TSMC를 가장 먼저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TSMC 공장의 미국 내 건설은 한국, 대만 등 아시아 지역 반도체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미국의 리쇼어링(기업의 본국 회귀) 전략과 맞닿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의 글로벌 확산을 계기로 첨단산업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의 공급사슬이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미 현지에 공장을 지으라고 대만의 TSMC와 미국의 인텔, 한국의 삼성전자에 압박을 가해왔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 추격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추격전은 지난해 4월 '반도체 비전 2030' 발표 이후 속도가 붙었다. 이 비전은 2030년까지 133조원을 쏟아부어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1위에 올라선다는 것이다.

'반도체 비전 2030'의 핵심 전략은 대규모 투자를 통한 기술력 확보다. TSMC가 연구 개발에 비용을 아끼지 않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오히려 투자 규모는 TSMC를 능가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시설투자로 79억달러(9조1700억원)를 집행하면서 분기 기준 역대 최고액을 갈아치웠다. TSMC보다 25억달러 이상 많은 금액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노력이 실제로 파운드리 점유율 확대로 이어질지는 좀 더 두고 봐야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TSMC가 그동안 쌓은 고객사와의 신뢰가 여전히 견고해서다. '추격자' 인 삼성전자에 압도적인 기술력이 요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