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 스님(오른쪽)과 박희승 교수
고우 스님(오른쪽)과 박희승 교수
“모든 갈등의 근본 원인은 ‘내가 있다’는 착각에서 나오는 집착 때문입니다. ‘나’는 독립된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도 마치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집착하기에 이기심이 나오는 겁니다. 내가 있고, 내가 살아야 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옳고 너는 틀렸다, 이런 생각을 일으키니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것입니다.”

경북 봉화 금봉암에 주석(駐錫)하고 있는 조계종 원로 고우 스님(83)은 이렇게 설파한다. 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나’의 실체는 없다는 것일까. “나는 산소에 의지하고, 산소는 나무와 숲에 의지하며, 나무와 숲은 지수화풍에 의지한다. 그러므로 나는 자연과 우주 삼라만상에 의지하여 존재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고우 스님은 그래서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영원히 행복하려면 ‘내가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연기(緣起)의 지혜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기란 모든 존재, 우주 만물이 서로 의지하여 있다는 것. 외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 바로 ‘나’의 실체다. 그러니 고정불변한 나, 독립된 실체로서의 나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책마을] "모든 집착과 갈등은 극단적인 사고에서 옵니다"
《태백산 선지식의 영원한 행복》은 조계종의 대표적 선승인 고우 스님의 법문집이다.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20년 가까이 불교 교리와 간화선 수행에 대해 배워온 박희승 불교인재원 교수가 그간의 법문 내용을 꼼꼼히 기록하고 정리했다. 연로한 데다 최근 들어 기억력이 점점 떨어져 더 이상 대중이 법을 들을 기회가 없어진 것을 안타까워한 박 교수가 보은의 심정으로 법문을 정리했다고 한다.

고우 스님은 부처가 누구인지, 어떻게 수행하고 깨달았는지, 그 깨달음의 내용은 무엇인지부터 시작해 불교 교리, 선불교의 등장과 간화선의 전개, 역대 조사(祖師)의 가르침과 참선하는 방법, 일상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화두참선의 효능에 이르기까지 쉬운 언어로 곡진하게 설명한다. 교리-간화선-깨달음으로 이어지는 논리적 설명이 명쾌하다.

책을 관통하는 핵심은 중도(中道)와 연기다. 중도란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대립하는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가운데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고우 스님은 중도와 연기를 알면 너와 내가 둘이 아님을 알게 된다며 양극단에 치우친 모든 것을 반대한다. 예컨대 참선을 하더라도 깨닫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은 부처와 중생이라는 양극단의 사고다. 깨닫지 못하더라도 수행한 만큼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간화선은 옳고 남방불교의 수행법인 위빠사나는 그르다거나, 화두참선만이 최고라는 생각도 집착이다.

진보와 보수, 노동자와 사용자, 남녀, 남북, 여야, 갑을 등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서로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라 의지하는 관계임을 안다면 갈등과 다툼의 이유가 없다는 말씀이다. 중도를 행하면 도를 닦으면서 장사도 잘할 수 있다며 실례를 들려준다. 식당을 하는 보살님(여성 신도)한테 “손님을 돈으로 보지 말고 은인으로 보라”고 했더니 한 달 후에 와서 “장사가 대박이 났다”고 하더란다. 고우 스님은 “스트레스나 짜증, 화도 모두 ‘나-너’라는 양변에 집착해서 일어난다”며 “중도연기로 자신과 세상을 본다면 나뿐만 아니라 남도 잘 이해하게 돼 소통과 공감능력이 높아져 인간관계가 개선된다”고 강조한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