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를 만든 현대사…그날의 함성 속으로 가다"
이혜영씨, '한국 민중항쟁 답사기' 시리즈 첫 책 펴내

"전라도는 참으로 선명하고 아름다운 땅이다.

그 터전의 사람들은 부당한 권력에 맞서 어느 곳보다 분명하게 싸웠다.

치열한 고민과 과감한 실천이 있었고, 크고 작은 조직들이 생물처럼 움직였다.

성공과 실패가 교차했지만 결국 전라도는 우리나라가 민주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큰 헌신을 했다.

"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각 지역 민중들의 치열했던 항쟁사를 생생하게 재구성해 들려주는 '한국 민중항쟁 답사기'의 첫 번째 책 '광주·전남 편'이 출간됐다.

저자는 자신을 '오월광주 1.5세대'라고 말하는 이혜영(44) 씨다.

1980년 봄, 이씨가 광주의 한복판에 살 때의 나이는 다섯 살이었다.

서른에 돌아와 고향살이를 다시 시작했지만 익숙한 도시 풍경과 달리 '광주사람들'은 늘 새롭고 낯설었다.

현지인이면서도 여행자처럼 쭈뼛쭈뼛 광주살이를 했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부채의식을 면제받은 오월 광주 1.5세대이건만, 한편으로 오월 광주 시민들이 실현한 눈부신 공동체를 목격하지 못한 갈증이 컸다고 한다.

일종의 새로운 부채의식이자 뭉클한 자부심이었다고 하겠다.

이에 저자는 젊은 촛불혁명 시대와 소통을 꿈꾸는 '한국 민중항쟁 답사기' 시리즈를 기획했고, 그 첫 결실로 묵직한 분량의 '광주·전남 편'을 내놓게 됐다.

땅과 인물, 이야기로 풀어본 광주·전남의 민중항쟁사

책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함평 고구마 피해보상 투쟁, 신안 하의도 농민항쟁, 나주 수세거부 투쟁, 여순사건 등 광주·전남 지역의 주요 항쟁 기록을 탐사기와 지도, 사진, 그림 등으로 세밀하면서도 감명 깊게 담아냈다.

아픈 역사의 민중항쟁을 '사료' 중심이 아니라 '땅'과 '인물' 이야기로 재구성해 들려주는 것이다.

특히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일이 목전인 시점에 출간돼 더욱 눈길을 끈다.

책은 1970~80년대를 주로 다뤘다.

저자의 말처럼, 이는 그 이전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억압과 모순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이전의 산발적인 저항이 1970년대부터 조직적 투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억눌려왔던 민중의 힘들이 가열차게 솟구쳐 오르기 시작한 게 바로 이때였다.

알다시피 전라도는 오래도록 우리나라의 대표적 곡창이었다.

그리고 이 지방 사람들의 정체성은 다름 아닌 농민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에 산업화가 경부(서울-부산) 축을 따라 진행되면서 그림자는 급격히 짙어졌다.

계층적으로는 농민을 희생시키면서 도시노동자의 규모를 늘렸다.

공간과 계층의 양 측면에서 모두 소외된 지역이 바로 전라도였다.

그 때문인지 수도권의 노동운동을 주도한 이들은 전라도 출신이 많았다.

1979년 8월 서울 YH무역 농성에서 사망한 김경숙이 그랬고, 1980년대에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시인 박노해 또한 그러했다.

1970~80년대를 대표하는 저항시인 김남주는 감옥에서 오월시들로 반독재 민주화와 함성을 끌어냈으며, 송기숙 전남대 교수는 박정희 정권의 '국민교육헌장'을 정면으로 비판한 '우리의 교육지표' 선언문을 내는 데 앞장섬으로써 해직과 투옥을 기꺼이 감수했다.

땅과 인물, 이야기로 풀어본 광주·전남의 민중항쟁사

사필귀정이라고 했던가.

한때 '빨갱이', '종북', '용공', '친북' 등 온갖 누명과 낙인 속에 물린 재갈을 감내해야 했던 뒤틀림의 역사는 시대 흐름과 함께 차츰차츰 바로잡혀왔다.

동학농민혁명이 그렇듯이 5·18광주민주화운동도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서 기나긴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나 본래의 빛을 찾았다.

저자는 답사의 마무리로 여수·순천 사건을 다루며 이같이 말한다.

"1948년의 일이라 (책에서 다룬) 다른 사건들과 시간상 가장 멀지만, 한국 사회가 겪은 거의 모든 뒤틀림의 뿌리다.

여순사건을 제대로 규명해야 오늘날 우리의 표정이 더욱 밝아질 것이다.

우리가 외면하든 모르든 여순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 이 글의 제목을 '제 이름을 기다리는 첫 단추'라고 단 이유이기도 하다.

이씨는 '광주·전남편'에 이어 '부산·경남 편', '대구·경북 편'을 향후 차례로 집필할 예정이다.

내일을여는책. 456쪽. 2만3천원.
땅과 인물, 이야기로 풀어본 광주·전남의 민중항쟁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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