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청동 학고재갤러리에 전시 중인 김재용의 ‘도넛 매드니스!!’.   /서화동 기자
서울 삼청동 학고재갤러리에 전시 중인 김재용의 ‘도넛 매드니스!!’. /서화동 기자
온통 도넛 천지다. 손바닥만 한 도넛부터 물놀이용 튜브만 한 왕도넛까지…. 별별 색깔과 문양으로 알록달록 반짝이는 도넛이 눈을 유혹한다. 달팽이조차 “세상에! 너무 달콤해!”라며 침을 흘리고 도넛을 베어 문다. 서울 삼청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도자조각가 김재용(47)의 개인전 ‘도넛 피어(DONUT FEAR)’다.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퍼드 아트스쿨에서 도자와 조각을 전공한 김재용은 도넛 모양의 화려한 도자 조각으로 국제적인 지명도를 얻었다. 결혼 후 뉴욕에서 생계를 위해 요식업에 투자했던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크게 실패했다. 도넛이라도 만들어 팔까 생각하던 그는 먹는 도넛 대신 흙으로 도자 도넛을 만들기로 했다. 선천성 색약이라 적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해 어두운 색에만 집착했던 과거도 털어버렸다. 즐거운 작업을 해보자며 만든 각기 다른 색과 모양의 도자 조각이 수백 개, 수천 개 쌓이면서 색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도넛 피어는 ‘두려워하지 말라(Do not fear)’는 뜻이다. ‘DONUT’과 ‘Do Not’의 발음이 비슷한 데서 착안했다. 타고난 약점도, 경제적 어려움도 두려워하지 말고 맞서면 이길 수 있다는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도넛에 담은 꿈·희망…두려움마저 날리다
전시장은 1472개의 도넛으로 장식돼 있다. 손바닥 크기의 작은 도넛부터 지름 1m의 대형 도넛까지 화려한 무늬와 색깔을 입은 도넛들이 감탄사를 자아낸다. 작품 제목들도 코믹하다. 전시실 맨 안쪽 방의 ‘도넛 매드니스!!’ 연작은 사면 벽을 2012년부터 올해까지 제작한 1358점의 도넛 조각으로 설치한 대작이다. 도넛 위아래까지 시트지에 인쇄한 도넛으로 가득 채웠다. 삶의 벼랑 끝에 몰린 작가가 탄생시킨 도넛에서 관람객들은 오히려 달콤하고 기분 좋은 환상과 꿈에 젖는다.

‘아주 아주 큰 도넛’ 연작은 지름 1m 이상의 대형 작품이다. 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제작한 원형, 하트, 곰, 별 모양의 도넛에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스테인리스 스틸, 거울 등으로 채색하고 무늬를 만들어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작은 도넛-작은 욕망에서 큰 도넛-큰 욕망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담았다.

청화 도자의 형식을 빌려 제작한 ‘동양과 서양에서 자랐거든’, 십장생을 그려넣은 ‘오래 살자’ 등의 ‘블루&화이트’ 시리즈도 눈길을 끈다. 서양 신화와 한국 민화에서 차용한 이미지,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중동의 아라베스크 문양 등을 그려넣었다. 작가의 자화상과도 같은 달팽이 작품들은 유쾌하고 코믹한 몸짓과 표정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도넛에 담은 꿈·희망…두려움마저 날리다
“도넛은 미소를 만드는 도구”라는 김재용의 작품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얼어붙은 미술계에서 이례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3월 25일 개막한 이후 최근까지 평일 40~60명, 주말에는 100~200명이 찾아와 관람하고 있다. 120만원짜리 소품은 100개 이상 팔렸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